동서발전, 노조활동 지속적 개입∙방해 정황 속속 드러나
발전노조 박종옥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동서발전 노조와해 공작 책임자 처벌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
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양지웅
동서발전의 노조활동 개입 문건에 대해 박종옥 노조 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이길구 동서발전 사장 퇴진과 책임자 처벌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투쟁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박종옥 한국발전산업노조(발전노조) 위원장은 19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동서발전의 일산 열병합발전처에서 작성한 ‘발전노조 탈퇴 투표결과에 대한 원인과 대책’이라는 문건에 대해 “회사의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노조활동 개입과 방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동서발전 노조 와해공작 문건 ⓒ민중의소리
특히 문건의 2페이지에 나온 <파업 찬반투표, 5대 집행부 선거에서 주요 노무현안에서 회사방침 적극 수용>이라는 문구에 대해 “사측이 장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노조 활동에 개입하고 방해했음을 나타내는 분명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문건의 내용이 일정별로 굉장히 정교하고 치밀한데 사측의 어느 선에서 결정해 개입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회사 전체가 움직인 것이 확실하다”며 “회사의 지침 없이 일개 발전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발전노조는 동서발전 등 5개 발전회사를 포괄한 산별노조로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다. 지난해 11월 18일부터 23일까지 동서발전에서는 발전노조 탈퇴 찬반을 묻는 조합원 총투표가 실시됐다.
이번에 폭로된 문건은 일산열병합발전처에서 동서발전 본사에 투표 직후 상황을 정리하고 향후 대책을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에 따르면, 사측은 투표일까지의 기간을 2단계로 나눠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사측은 사내 화합 분위기를 높인다며 와병 중인 조합원 가족을 돕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전체 조합원을 3가지 성향으로 분류해 반대가 확실한 직원들에게는 투표 불참까지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문건에는 투표가 끝난 직후 극비로 투표함 개봉을 시도하다 막판에 실패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박종옥 위원장은 “문건의 내용이 그대로 집행됐다”고 밝히며 “드레프트제도를 통해 무보직 상태로 만들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면직될 수도 있다는 협박이 조합원들에게 공공연하게 가해졌다”고 말했다.
드레프트제도란 직원들이 근무 희망지를 세 군데 써내되 사업소장들이 거부하면 무보직으로 직무교육을 받고, 무보직 상태가 세 번 거듭되면 ‘삼진아웃’으로 면직된다는 제도다. 동서발전은 발전노조 탈퇴 투표를 전후해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으며, 벌써 무보직 상태에 있는 중간 간부급 사원이 9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 반대파로 찍히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꼈다”고 박 위원장은 전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일산 외에 동서발전의 발전소가 있는 당진, 울산, 동해, 여수(호남발전소) 등에서도 문건에 나타난 계획이 그대로 실행됐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이 문건에 대해 “직원 개인이 작성한 것으로 회사에 보고되지 않았다”며 “누가 작성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발전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 ⓒ민중의소리
박 위원장을 포함한 9명의 발전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들은 18일부터 동서발전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빌딩 1층 로비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박 위원장은 “이길구 사장 퇴진, 관련자 처벌, 공개 사과, 드레프트제도 철회 등 4대 요구를 회사가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전노조는 이미 합법 절차를 다 밟은 쟁의 상태이기 때문에 사측이 4대 요구를 거부하면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 위원장은 “풍문으로만 떠돌던 문건의 실체가 드러나자 현장 조합원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며 “회사는 조합원을 분류하고 협박하며 탈퇴공작을 벌였지만 노조는 조합원 모두를 끌어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원장으로서 사측의 악랄한 범죄로부터 조합원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반드시 승리해 분노와 상처를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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