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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간데없고 발전노조 깃발도(?)...

동지 2011.05.10 조회 수 957 추천 수 0

<한겨레신문 칼럼>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도… / 김형태 변호사

 

 

이십년 전 이맘때, 담장 너머 라일락 꽃들이 진 한가로운 일요일 저녁이었다.

시의원들을 상대로 한 강의 준비를 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당시 전노협 자문을 맡고 있던 인연으로 대기업노조연대회의 3자 개입 사건을 변론하고 있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쳐 자리를 잡아가던 대기업 노조들이 경기 의정부 다락원에 모여

 대우조선 파업  지지선언을 하자 노조위원장들 전원을 영장도 없이 잡아갔다.

 

불법체포죄로 담당 검사들과 경찰서장을 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했다.

 몇년의 지루한 재판 끝에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받아 얼마인가 배상 판결을 받았다.

재판이 너무 늘어져 빨리 판결을 받기 위해 검사와 경찰 개인들에 대한 소는 취하했다.

 

 이 과정에서 민사소송 담당 검사로부터 술까지 얻어먹었으니 자고로 변호사가 검사로부터

 접대를 받은 건  아마 전무후무한 일이지 싶다.

이게 다 부당한 노동법제도에 맞선 약자들의 연대라는 공동선의 명분 덕이었다

 노조가 그저 노조원들의 실리만 챙기려 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그때 잡혀간 이들 중에 박창수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도 있었다. 노태우 정권의 안기부는

노조들의 연대를 막기 위해 한진중공업노조를 상대로 엄청난 공작을 했다.

 

박창수 위원장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 일요일 저녁, 안양교도소에서 머리를 다쳐 병원에 나와 있던 그가 전화를 걸어와

밤에라도 꼭 좀 와달라 했다.

 일요일이고 강의 준비도 있어 내일 아침에 가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전화를 받았다.

그가 8층 병원 바닥에 떨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거였다. 컴컴한 새벽 거리를 정신없이

 차를 몰고 가면서 수없이 가슴을 쳤다. ‘어젯밤에 갔더라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일요일 저녁에 와달라고 전화를 했을 건가.’

그는 피를 흘린 채 시멘트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밤 안기부 직원이 병원에서 그를 만나려

했던 것까지는 확인이 되었다. 당시 대책위 명단에는 노무현·천정배 등의 이름도 보인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경찰들은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와 박 위원장의 시신을 빼앗아갔다.

몇 달을 진상규명하러 뛰어다녔다. 검찰 고위층이 노골적으로 회유를 하기도 했고,

미행과 도청으로 엄청난 압박도 했다.

종국에는 변호사가 안기부 앞잡이라는 식의 역소문을 퍼뜨려 조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옆에서 보니 노조 활동은 정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십년 세월이 흘렀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는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넉달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현대자동차노조가 직원 채용 때 자녀들에게

 가산점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세웠던 지하철노조는 탈퇴를 선언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도 내려졌다. 평균 월급이 120여만원인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의 60%에  이르지만 세 배가 넘는 돈을 받는 정규직들은

자식에게 자리를 넘기려 한다.

 80년대 중반 이래  자본주의 고도화사회 안정으로, 아래층에 있던 일류대 학생이며

 대기업 노조원들 같이  머리 좋고 말 잘하고 권리의식 투철한 이들은

이제 중류층 이상에서 자리를 잡아 계급의 세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문명의 성쇠를 도전과 응전의 시각에서 설명했다.

과거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도전에 응전할 의사와 능력이 있던 이들은

 이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필요성이 여전한 이들은 자본주의 현실이

 너무 강고해서 맞서 싸울 의지도 능력도 없다.

약자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버려져 있다. 우리 사회의 쇠퇴가 눈앞에 보인다.

 

노동조건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로 열악할 때는 개선 요구가 그 자체로

공동전선이 되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더는 공동전선이 아니고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곤 한다.

 

하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고용 안정, 비정규직 철폐는 박창수 위원장이 목숨 바친 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공동선이다.

 

아직 깃발을 내릴 때가 아니다.

 

 

-김형태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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