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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남은 선택은?

참그루 2011.11.23 조회 수 1184 추천 수 0

[경향신문 기고]  ‘한·미 FTA’  99%의 남은 선택은?   이해영 한신대 교수

 

여당의 어이없는 ‘날치기’ 폭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로서는 통과된 한·미 FTA에 조금도 동의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래에 그 이유를 다시 밝혀 두고자 한다.
첫째, 한·미 FTA는 심각하게 ‘잘못된 협상’이자 불평등협정이다. 지금까지 협상에 참여한 정부 관료들은 이를 두고 한동안 ‘이익의 균형’ 운운하고 또 ‘잘된’ 협상이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 모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주장하건대 한·미 FTA는 대부분의 중요한 쟁점에서 미국의 이익과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된 결과물일 뿐이다. 한·미 FTA는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FTA를 통틀어 가장 미국에 유리하게 체결된 것이다. 특히 미국이 의회에서 통과시킨 이행법안은 강대국 횡포의 극치라 할 만하다. 우리에게는 한·미 FTA가 국내법률인 반면, 미국 내에선 국내법률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간단한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한·미 FTA의 경제효과는 없거나 있다 해도 아주 미미할 것이다. 정부 측은 한·미 FTA 경제효과가 최대 국내총생산(GDP)의 5.66%에 달하고, 일자리가 35만여개 증가하며,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며, 또 우리의 무역수지 흑자가 증가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한·유럽연합(EU) FTA 발효 4개월 만에 흑자 규모가 37억달러 감소했고, 칠레와 7년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5년간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음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런 상태에서 강자의 보호주의에 다름 아닌 자유무역협정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저 미국의 ‘경제영토’가 될 뿐이다.
셋째, 2010년 12월의 한·미 FTA 재협상으로 인해 한·미 FTA는 더욱 더 잘못된 협상이 돼 버렸다. 재협상의 핵심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4년의 시간을 유예해주고, 미국의 자동차 비관세장벽을 대폭 강화한 데 있다. 한·미 FTA 전체를 통틀어 자동차 부문은 그저 한 부문이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협상을 통해 이것이 무너짐으로써 사실상 한·미 FTA를 통해 무슨 이익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무망하다.
넷째, 한·미 FTA는 대미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불안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이는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금융위기는 경상수지가 적자일 때 발생했다. 대미 상품수지 흑자가 감소하고, 서비스수지 적자가 현재의 속도대로 악화된다면, 대미 경상수지는 낙관할 수 없다. 급증하고 있는 서비스무역 적자와 정체 상태인 상품무역 흑자를 놓고 볼 때 한·미 FTA가 발효되면 조만간 이 우려는 현실이 될 것이다.
다섯째, 한·미 FTA는 수출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 것이다. 한국 증시를 일러 외국계 투기자본의 자동인출기(ATM Korea)라고 한다. 한·미 FTA는 이 경향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든다. 단적으로 투자자-국가소송제나 역진방지 메커니즘(래칫 조항) 등으로 인해 ATM Korea는 항구화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한국의 주식시장은 ‘글로벌 호구’가 될 뿐이다.
여섯째, 한·미 FTA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불안의 원인이 될 것이다. 한·미 FTA 없이도 현재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3%에서 2009년 32%로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이다. 한·미 FTA는 수출기업 대 내수기업,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현저하게 심화시킬 것이다. 이때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하청 계열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소위 ‘동반성장’은 구호에만 그칠 것이다.
일곱째, 한·미 FTA는 정의롭지 못한 협정이다. 자동차산업을 위해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의 중소 제조업체, 대부분의 서비스업, 지적재산권, 의약품산업 등이 FTA의 희생양이 되었다. 보상은 어음으로 주어졌고, 결제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동차산업의 기대이익도 한국차의 미국 현지생산 비율이 이미 절반에 달하는 조건에서 불확실하거나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일자리의 해외유출도 감안해야 한다.
여덟째, 한·미 FTA 협정문에 내장된 저 허다한 독소조항 때문이다. 한·미 FTA 협정문은 한마디로 독소조항의 교과서다. 그 수많은 독소·문제 조항 중 으뜸은 투자자-국가소송제다. 물론 여기에다 역진방지(래칫) 조항, 네거티브 리스트, 허가-특허 연계 조항 등 이 모두가 궁극적으로 우리 정부의 이른바 ‘정책공간(policy space)’을 제약, 위축시킬 것이다.
아홉째, 한·미 FTA는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복지국가는 이미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진보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역시 일찌감치 ‘보편적’ 복지국가를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이렇듯 한·미 FTA는 복지와 양립할 수 없다.
열째, 한·미 FTA를 통한 이른바 ‘중국 견제’가 결국 동아시아의 역내 안정과 통합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그저 통상협정을 넘어 정치군사적 협정으로 오남용될 때 역내 안정과 평화는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한·미 FTA가 날치기된 상태에서 시민사회를 비롯한 99%의 선택은 자명하다. 이러한 무법적인 날치기 폭거를 보며 그저 나는 한·미 FTA 협정문 24.5조를 또다시 떠올렸다. 이렇게 되어 있다. “이 협정은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180일 후에 종료된다.” 그 외의 어떤 다른 요건도 없다. 대통령이 통보하면 그로부터 6개월 후 협정은 종료된다. 국회 동의도 필요없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도입한 이 종료 조항은 이제 막연한 조항이 아니라, 살아있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애초 절차적 정당성조차 충족하지 못한 채 출발한 한·미 FTA는 ‘국익’을 어떻게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도무지 그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지막 통과 과정 역시 최악이었다. 이제 우리 99%에게도 남은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다. 한·미 FTA의 폐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 통합적이고 복지 친화적인 통상정책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그리고 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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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2011.11.23
우리나라는 평지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아 농가인구당 경지면적이 아주 협소하고 땅값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에 속한다. 그 결과 생산비가 높아 평균 가격비용 면에서는 도저히 미국·유럽산 농축산물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이른바 가격 면에서는 국제 경쟁력이 턱없이 낮다. 미국 측의 계산만으로도 미국은 12조 원 가까운 수출 흑자를 해마다 구가할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로선 소농·가족농의 특성을 살려 품질과 안전성(安全性)을 높여 비가격 면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땅의 환경 생태계농촌 공동체를 지키면서 농축산업을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유기농업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 유기농업에도 미국 등 강대국은 품질인증의 동등성(equivalence)을 요구하며 유기농의 무관세 자유무역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무농약 이상 유기농업의 57%를 생산해 내는 전라남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성실한 지도자와 착한 농부, 그리고 좋은 정책만 있으면 우리나라 농업을 15년 내에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일이 힘들지언정,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유기농업은 과거에도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을 먹여 살려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가 있다.
범지구적으로 유기농업을 육성하는 것은 환경 생태계 오염과 기후 온난화에 대처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WTO(세계무역기구)도 유기농업에 대한 정부보조(직접 지불제)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그 유기농 축산물을 육성하여 마을마다 두세 개 품목을 골라 발효 가공식품으로 키워나갈 경우 농촌 주민의 부가가치 소득을 배가시킬 수 있다. 한미 FTA를 계기로 비준 후의 대책이라도 제대로 세워서 환경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며 농업농촌을 살려야 한다. 한미 FTA로부터 국민의 식량 주권을 보전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식량 자급률이 25%(그중 쌀을 제외할 경우 4.5%에 불과)로서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가 농사를 짓지 않고도 국민의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풍전등화 그대로이다. 지구 생태계 붕괴와 기후변화, 식량부족사태 하에서 한미FTA로 날개를 달게 된 신자유주의 세계 다국적기업들이 호시탐탐 대한민국의 식량 주권을 넘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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