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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노동조합 1 (스파르타쿠스)

제2발 2012.03.12 조회 수 998 추천 수 0

 

노예해방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

 

로마의 원로원 부자로부터 제국의 운영권을 빼앗은 것은 갈리아를 정복했을 때 1백만 명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든 귀족 출신의 부유한 장군들이었다. 당시 로마는 노예가 집중되어 있어서 노예반란이 그치지 않았다. 기원전 138~132년에도 노예반란이 시칠리아 섬을 휩쓸 정도였다. 노예들은 자기들이 경작하는 농장에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자유민들은 약탈에 여념이 없었고 이런 양상은 되풀이 되었다.

 

로마의 대지주들은 대농장을 가지고 노예들을 부리면서 왕처럼 살았다. 농지를 잃은 농노와 빈민 그리고 노예들은 이들에 대한 불만과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검투사 경기는 로마 공화정이 정복으로 번영을 누리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막대한 부로 오락거리를 찾은 부유층과 불만에 찬 서민들 그리고 넘치는 노예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경기였다.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무예가 뛰어났고 유식했으며, 냉철하고 신중했다. 검투사에게는 보수도 가족도 생명도 보장되지 않았다. 아무런 영광도 보답도 없는 싸움을 해야 했다. 결국 노예 검투사들은 서로에게 휘두르는 창에 의해 언젠가는 찔려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트라키아에서 출생한 스파르타쿠스는 노예 검투사(劍鬪士)였는데 로마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73년 74여 명의 동료 노예와 함께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 목자(牧者) ·농노 ·빈농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탈출한 검투사들은 도망가지 않고 로마공화정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기도 결심했다. 이들은 카푸아 일대 검투사들, 노예들을 모아 수만의 노예군단을 이루었다. 로마 집정관이 보낸 진압군 2개 군단을 격파하고 남부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노예군은 한 때 12만 명으로 불어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스파르타쿠스 노예군은 로마가 보낸 군대를 전멸시키거나 대파했으며 세 차례의 대승을 거두며 3년 동안 이탈리아를 휩쓸고 다녔다.

 

이들 군대는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고 쌓인 원한과 울분 그리고 노예로 살기를 거부하면서 싸우다 죽겠다는 결의와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전의는 귀족자제들로 구성된 로마 보병이나 돈을 바라는 로마군과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르만족 출신의 동료 크릭수스는 로마로 쳐들어가자고 제안하였으나 스파르타구스는 이를 거부하였다. 크릭수스는 3만의 병력으로 스파르타쿠스와 따로 싸우다가 로마군에게 패배한다. 이후 스파르타쿠스 노예군은 남하하다가 방향을 돌려 이탈리아 반도를 타고 북진하였다. 로마 원로원은 로마 굴지의 부자 군벌 크라수스에게 진압을 부탁하였다. 부자 크라수스는 엄청난 재력으로 순식간에 대병력을 모았다. 처음에는 패배하였지만 군대에 공포심을 유발하여 군사들을 결사적으로 싸우게 만들었다. 스파르타쿠스 노예군은 알프스를 목전에 두고 다시 남하하여 배를 타고 시칠리아로 건너가려 했으나 배를 제공하기로 한 해적들이 로마 지배계급의 유혹에 넘어가 노예군을 배반하였다. 그의 군대는 발이 묶였고 남하하는 로마군대의 포위망에 갇혀버렸다. 크라수스는 대병력을 스파르타쿠스가 발 묶여 있는 레기움에 집결시켰다. 스파르타쿠스는 포위망을 뚫는 데 성공하였지만 1만 2천 명의 병력을 잃었다. 스파르타쿠스 군은 실라루스 강가에서 크라수스 군을 맞아 최후의 전투를 벌였다. 스파르타쿠스는 마지막까지 적의 사령관을 향해 달려들어 싸우다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포로가 된 노예군 6천 명은 반란의 시작지인 카푸아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십자가에 매달려 졌다. 작가들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예 10만 명 살해당했다고 기록한다. 이후에 노예주들은 노예가 주인을 살해할 경우 그 가정에 있는 노예 모두를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노예들의 반란은 로마의 지배계급을 전율시켰으며 후에 그에 대한 갖가지 전설이 생겼다.

 

스파르타쿠스가 이탈리아 반도를 오르내린 까닭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도부의 의견이 불일치했다는 설, 로마의 도시들에서 노예들의 봉기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설, 노예의 희생에 기반한 거대한 로마제국 자체를 없애려고 했다 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공화정에 대항한 항쟁을 원하였으나 다수의 노예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다가 내분이 일어났다는 설 등이 있다. 또 스파르타쿠스가 로마 사회를 재편할 생각까지 못했거나 그렇다고 단순히 로마의 옛 질서를 인수해서 운영하고 싶은 처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스파르쿠스의 반란은 지난 2천년 동안 억압자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에 영감을 주고 있다. 칼 맑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스파르타쿠스라고 했고, 1919년 독일혁명을 이끈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그들 혁명조직의 이름을 스파르타쿠스 동맹이라고 칭하였다.

 

모든 사상들은 인간은 어째서 평등하지 않는가를 해석하고 설명한다. 부처는 신분의 귀천이 모두가 덧없으므로 그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은 따로 있으며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했다. 플라톤은 노예는 노예의 본성을, 귀족은 귀족의 본성이 있다고 하였다. 예수는 다 신의 뜻이니 노예로 태어나든 귀족으로 태어나든 불평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는 이런 모든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고 노예해방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스파르타쿠스는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든 스파르타쿠스는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기반위에 놓인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가들은 노동자들 중에서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임금노예인 현재의 노동자는 과거 로마 노예의 계급적 후손이며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은 비록 지금은 자본가, 국가, 경찰, 군대에 포위에 있지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일종의 잠재적인 스파르타쿠스 군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전복의 꿈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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