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단독]실체 없는 ‘숨은실세 이석기’

경향 2012.05.13 조회 수 2207 추천 수 0

 야권연대 등 선거전략 조언하며 당권파와 신뢰 형성


이석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50)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비례대표 경선을 "총체적 부실, 부정"이라고 규정하기 이전부터 이석기 당선자는 당권파의 핵심 실세, 배후인물로 지목돼 왔다. 이석기 당선자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지역지부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권파의 사실상 수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당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석기 당선자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일반명부 경선에서 27%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한 사실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석기 당선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석기라는 이름은 민주노동당 출신 통합진보당원들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비당권파들은 하나같이 이석기 당선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당권파라고 해서 이석기 당선자와 모두 친한 사이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석기 당선자와 함께 당내 사업을 진행하며 신뢰를 형성해 왔다.

·비당권파에게는 생소한 인물


4월 12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증 교부식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비당권파인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장(53·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얼굴 한 번도 못봤다. 나중에 이력이 나오는 걸 보고서야 민중의소리, CNP전략그룹과 관련된 사람이구나 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석기 당선자를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라고 칭한 바도 있다.

민주노총의 한 핵심 관계자도 "이석기 당선자는 민주노총에서 전혀 활동한 바 없는 사람이다. 민주노총과 CNP전략그룹이 홍보 관련한 계약을 한 적은 있지만, 영업담당자만 봤지 이석기 본인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석기 당선자가 비례대표 경선에서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등 민주노총 추천 후보를 앞선 데 대해 이 관계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에게 1위를 내줬다는 것은 그만큼 민주노총이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사람들도 이석기 당선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 출신이자 2002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당원이었던 윤갑인재 비례후보(50)는 "이석기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고, 나도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나는 비례 경선 과정에서 전국을 돌아다녔고, 문자메시지로도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데 이석기 당선자는 특별히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 모양새여서 당선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민주노총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 이영희 후보가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자주파로 분류되지만 비당권파인 황선 비례후보(38·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역시 이석기 당선자에 대해 "당 활동하면서 본 적이 없고, 비례대표 후보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 봤다. 다른 당원들이 아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며 "나중에 이석기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다들 이 당선자를 엄청 존경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후보는 "언론에서 이석기 당선자를 괴물처럼 묘사하는데 그런 모습은 아닐 것으로 본다. 그가 살아온 길을 알아보니 그동안 묵묵히 정중동의 활동을 해온 사람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권파는 '믿을 만한 동료'로 인식


이석기 당선자는 < 한겨레 > 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라는 주장을 반박하며 "경기동부연합이라 표현되는 사람들 중에 내가 포함돼 있는데, 나는 경기동부연합이 활동했을 때에 참여한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민주노동당 학생당원으로 시작해 10년 이상 활동해온 한 비당권파 인사는 "한겨레 기자는 당권파 인적 네트워크의 측면에서 '경기동부연합'을 거론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석기 당선자는 전국연합 내의 경기동부연합에 한정해서 답변했다.  동문서답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당권파에서 원래 민주노동당 고위간부 경력이 있는 사람을 출마시키려 했지만, 건강 등의 이유로 이석기 당선자가 나온 것으로 안다"며 "명분을 잃은 입장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실리까지 잃을 순 없다는 게 당권파의 판단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기 당선자가 당권파의 '실세'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지만, 막상 당권파 인사들도 이석기 당선자를 모두 잘 아는 건 아니었다. 비례대표 일괄사퇴 권고안 의결을 "쿠데타적인 상황"으로 규정한 민주노동당 출신의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48)은 "비례대표 일괄사퇴를 반대하는 입장은 이석기 당선자와 같지만, 서로 사적인 관계는 없다. 경기도당에서 CNP전략그룹으로부터 선거 조언을 받거나 홍보사업을 맡긴 적은 있지만 이석기 개인 때문이 아니라 CNP전략그룹을 보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승교 당 선관위원장(44)은 "민혁당 사건이 났을 때 내가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지만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이번 비례대표 후보자 토론 때 사회를 보면서 10여년 만에 처음 본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무슨 당권파냐. 내가 지지한 후보는 거의 꼴등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당권파 현직 의원, 당선자와 같은 핵심 인사들은 이석기 당선자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석기 당선자를 '실세'라기보다 '믿을 만한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다.

·"계파 단일 후보라서 1위 한 것"


이상규 당선자(47·서울 관악을)는 이석기 당선자가 민혁당 사건으로 수배, 수감생활을 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며 "내가 직접 겪은 사람인데 실세니 뭐니 언론에 나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규 당선자는 이후 민주노동당 후보로 서울시장과 은평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때 홍보기획을 담당하고 선거전략을 조언한 것이 이석기 당선자가 운영하던 CNP전략그룹이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CNP전략그룹과 함께 선거를 치렀던 지역에서는 CNP가 가지고 있었던 진보통합과 야권연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런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이석기 당시 CNP 대표였기 때문에 그사람을 지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혁당 사건으로 인해 복역 중이던 2003년 6월 특별휴가를 받은 이석기 당선자가 민혁당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하영옥씨와 어깨동무를 한 채 웃고 있다. / 연합뉴스이상규 당선자는 이석기 당선자의 별명이 '함박웃음'이었다며 "수배와 투옥생활을 하면서 이석기 당선자의 어머 니와 누나가 세상을 떴다. 이혼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동료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45·전남 순천)도 "이석기 당선자와 나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재·보궐선거 때 도움도 받았고, 민주노동당에서 선거를 치러오면서 자연스럽게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석기 당선자를 "진보정당 운동을 앞장서서 주창했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을 앞장서서 말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석기 당선자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통합진보당 탄생에 공헌을 했다"며 "CNP전략그룹 차원에서 조언하는 것을 넘어 직접 의원으로 활동하는 게 좋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과 김승교 선관위원장은 당내 계파 구성을 볼 때 이석기 당선자가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은 "비례대표 경선에서 이석기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석기 후보 한 사람만 후보로 냈고, 다른 계파는 여러 명을 냈다"고 말했다. 국민참여당 출신이나 민주노총의 경우 경선에서 여러 명을 냈기 때문에 표가 분산돼 이석기 당선자가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여계의 경우 국민참여당에서 정책위의장·최고위원을 지낸 노항래, 오옥만 후보 등이 경선에 나섰고, 민주노총 출신으로는 이영희 민주노총 정책위원장,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전 위원장 등이 경선에 나왔다.

김 의원은 당권파가 이석기 당선자를 위해 부정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동부로 일컬어지는 '주사파 꼴통'들이 당선만 되면 된다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선거를 일으켰다는 소설이 나온다. 박빙이거나 밀리는 상황이 되어야 부정을 하는 것이지 후보를 한 명만 내서 압도적으로 앞설 수 있는데 부정선거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비밀조직 선동 같은 일 없었다

"

김승교 선관위원장도 "통합진보당 내 당원 구성을 감안했을 때, 이 당선자가 최소 1, 2등은 할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동당 당내 선거를 보면, 오랫동안 당내 정파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당원들이 조직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당원 숫자가 제일 많은 당권파에서 나온 후보가 제일 지지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김 선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당원은 김 선관위원장의 말을 상세히 해설했다. 이 당원은 심상정, 이정희 대표 정도가 후보로 나오지 않는 이상 당원들이 비례대표 후보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번에도 참여당 출신이 아니면 노항래 후보를 모를 것이고, 민주노총 활동가가 아니면 이영희 후보를 몰랐을 것이다"라며 "평범한 당원들은 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후보가 좋은지 문의하고 투표할 수밖에 없고, 소위 경기동부연합 활동가들이 이석기 당선자를 추천한 것이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무슨 비밀조직이 선동하고 그런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민혁당 사건과 이석기

이석기 당선자는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경선 홍보 영상에서 스스로를 "젊은 시절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3년여 동안 수배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민혁당은 1989년 결성된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의 중앙위원장 김영환('강철서신' 저자)씨가 1991년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이듬해에 반제청년동맹이 지하당 조직으로 개편된 것이다. 김씨가 주체사상을 비판하며 전향한 이후, 현재 학원강사인 하영옥씨 등이 민혁당을 이끌어왔다.

2003년 6월 특별휴가를 나온 이석기 당선자가 서울 사당동 집에서 어머 니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당시 재판부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을 지냈다. 민혁당 사건이 불거진 이후인 1999년 이 당선자는 수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2002년 5월 체포됐다. 그는 2003년 3월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구성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이 당선자는 최근 방송 인터뷰를 통해 "당시 수배중이라 (민혁당에) 가담해 활동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2003년 4월 30일 하영옥씨 등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지만, 이 당선자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암투병 중인 모친 김복순씨가 위독한 상황에 이르자 이 당선자는 특별휴가를 받게 됐다. '양심수 이석기 석방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이 당선자의 특별휴가 기간 동안 동행한 바 있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당선자는 이 땅에서 교육받고, 사회운동 과정에서 양심에 따라 운동한 사람이다. 과거의 일을 가지고 이 당선자가 어디서 파견된 사람처럼 묘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먼저 석방된 하씨 등은 이 당선자의 석방을 위한 도보순례 등 석방운동을 벌였다. 결국 2003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이 당선자는 자유의 몸이 됐다. 하씨는 지난 1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소 이후에는 이 당선자와 만난 적이 없었다며 "지난해 가을에 부친상 때 문상을 와서 한 번 본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데 대해 "통합진보당을 북한하고 연결하는데 나를 도구로 쓰는 것 아니냐. 통합진보당에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출소한 이후 이 당선자는 기무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기무사가 2004년 9월 제출한 국감자료에서 자신을 '간첩'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2005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원고가 간첩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고, 간첩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가족들의 불행은 계속됐다. 국방부 부이사관이던 누나 이경선씨는 수배생활 중인 이 당선자에게 생활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후 이경선씨는 징계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으나, 기무사로부터 수사를 받은 뒤 팔다리에 힘이 풀리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은 끝에 2005년 6월 숨졌다. 당시 이경선씨를 변호한 것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였다. 이 당선자의 모친 김복순씨도 투병 끝에 2008년 3월 유명을 달리했다.

<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0개의 댓글

Profile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447 민주노총 여성연맹 인천지하철 노조원 임금 착취/인천일보 skrmsp 2012.05.08 1572 0
3446 남성화는 왜? 남동본부장 사퇴했나요? 복직하려고 2012.05.09 2162 0
3445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 4 나영복 2012.05.09 2790 0
3444 전기요금, 이번엔 원가 회복? 한전 2012.05.09 1584 0
3443 흥실이 결국 지가 살려고 운전원주기네 3 ㅆㅂㄴ 2012.05.10 2428 0
3442 박종옥 5대때 유춘민... 중계방송 2012.05.12 2874 0
[단독]실체 없는 ‘숨은실세 이석기’ 경향 2012.05.13 2207 0
3440 [펌] 나의 80년대 엔엘(NL)과 피디(PD) 경험기 NLPD 2012.05.13 1434 0
3439 [펌] 나의 80년대 NL PD 경험기 2 NLPD 2012.05.13 1778 0
3438 [펌]진보당 사태에 대한 단상 - 종파와 진성당원제 NLPD 2012.05.13 1359 0
3437 [펌]진보, 그런게 아직도 남아 있다면, 남은 선수끼리 가자 NLPD 2012.05.13 1519 0
3436 당권파, 회의에는 관심 없고… 폭력사태 처음부터 의도됐다 5대 2012.05.14 1261 0
3435 (정치시평) 진보가 부끄럽다 손호철 2012.05.14 968 0
3434 실업률 24%, 급진좌파연합 긴축반대, 좌파정당 건설, 폭력사태 노동과정치 2012.05.14 1098 0
3433 “싸우지 않고 이기는 원칙 지켜갈 것” 열심히 2012.05.15 1146 0
3432 그리스 노동자의 정치 1 LP TBN 2012.05.15 1059 0
3431 여** 노사화합선언 해주려고 발전노조 탈퇴하고 회사노조 만들어주다!!! 3 대단해 2012.05.15 1980 0
3430 남동발전 노·사, 2012년 단체협약 체결 정이미 2012.05.15 1933 0
3429 ▶ 복지자금 특판실시! 본부 2012.05.16 962 0
3428 남동발전 천당발전소 문제심각 1 1 4000 2012.05.16 1743 0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