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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노동조합 6 ( 그람시 1 )

제2발 2012.03.21 조회 수 793 추천 수 0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전략 그람시 (1)

 

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알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부의 하급관리를 하다가 지방유지들의 눈 밖에 나서 공금횡령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지방유지들이 지방을 독재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람시의 아버지는 이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생계는 모친의 삯바느질과 텃밭 농사로 이어졌다. 4살 때 사고로 장애인이 된 그람시도 하루에 열시간 일을 해야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석방되자 그람시는 고등학교에 재입학하여 형과 동거하였다. 형은 토리노에서 군복무하던 중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이탈리아 사회당에 가입하였다. 사르디니아는 광부들과 농민들의 운동이 치열했는데 군대와 경찰이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것을 보면서 그람시는 역사와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람시는 학문에 재능을 인정받아 지역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토리노대에 입학하였다. 그는 문학, 역사, 철학, 언어, 법학을 공부하였고 그 중에서도 언어와 철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건강악화로 중퇴하였다.

 

1913년 친구 타스카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사회당에 입당하였다. 당시 공업도시인 토리노는 노동운동이 활발하여 가두시위, 파업투쟁 등이 빈번하였다. 이를 보고 그람시는 토리노 노동자들의 강한 단결력은 북부 자본가들을 위협하고 남부 농민대중을 이끌 정도의 지도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람시는 사회당 기관지 편집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 정치, 노동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1917년 이탈리아 노동운동이 대단히 전투적으로 되어 가는데 그람시는 서구사회의 노동자 평의회 운동으로 사회당 내 좌파 세력을 형성하여갔다. 이어 대학 동창인 타스카, 테라치니, 톨리아티 등과 사회당 내 급진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할 잡지 ‘신질서’를 창간하는 데 이 잡지는 후에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가 되었다. 공산당 창당은 사회당이 투쟁정신을 잃고 자본가 지배계급과 타협하는 어용정당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19년 토리노 피아트 공장 노동자들의 공장 평의회 운동이 사회당의 미온적 지지와 보수주의 성향으로 실패하자 사회당을 이탈. 맑스·레닌주의의 면모를 갖춘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하였다. 당시 전직 사회주의자인 무솔리니에 의해 시작된 파시즘은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에 공포심을 갖고 있던 자본가들과 제대군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하였는데 사회당은 우유부단하고 개량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사회당은 급진적인 노동운동에는 제동을 걸면서도 정부와는 타협하고 파시즘의 확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초대 이탈리아 공산당 총서기였던 보르디가는 사회당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하도록 했던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과 갈등하고 있었다. 그람시는 초기에 보르디가를 지지했으나 날로 증대하는 파시즘 세력의 위협을 보면서 보르디가의 비타협적 태도에 회의를 품고 코민테른의 연합전선론 지지 입장으로 돌아섰다. 결국 보르디가는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이어서 그람시가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본가의 지지를 받은 무솔리니는 제대군인들을 앞장세워 로마로 진군하여 1922. 10월 권력을 잡았다. 집권 초기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의회진출은 허용하였으나 공장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하는 강온전략을 구사하였다. 공산당은 1924년 10명의 의원을 당선시켜 의회에 진입하였는데 그람시도 하원의원이 되었으며 1926년에는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국민당 이외에는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서 무솔리니는 그람시를 체포하였는데 그것은 사회주의운동을 지도하는 그람시의 지도능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검사는 그람시를 20년 동안 감옥에 넣어서 그의 두뇌활동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소하였다. 그람시는 결국 무솔리니의 감옥에 갇혔다. 그람시는 재판에서 20년 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37년 46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람시는 수감 기간 중에 역사와 정치에 대한 분석을 기록한 공책 29권을 남겼다. 이 공책을 모은 것이 ‘옥중수고’로 알려졌다. 여기에 그람시가 생각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전략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전력과 전술이 담겨져 있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이탈리아에 파시즘의 부흥을 보면서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미발달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일거에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성공한 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된 서구에서는 시민사회가 국가 내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파시즘을 지지한 것도 바로 이런 시민사회였다. 이렇게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는 혁명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내구성과 안정성을 가지게 되는데 그 기반이 바로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뿌리내린 시민사회였다. 기존의 맑스주의자들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주도한 파시즘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은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지 못하였다. 그람시에게 파시즘은 서구문명의 이탈도 아니고 독점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지배형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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