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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의 교섭창구 창구단일화

복수노조 2011.03.22 조회 수 1789 추천 수 0

 

[노동현안 리포트] 복수노조의 창구단일화 
 

김형동 변호사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기존 제도에 문제가 많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반성에서 시작한다. 변화된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헌법질서에 반하는지 여부 등이 그 기준이다. 호주제의 폐지나 민법상 성년을 19세로 통일한 것이 좋은 예다.



노동조합 전임자제도와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도 동일한 논리로 평가가 가능하다. 분명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금지는 과거 사용자의 노동조합 매수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고 있다. 급여지급을 미끼로 노조를 좌지우지하던 사용자가 다수 있었던 시대엔 급여 금지가 노조의 자주성을 지키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와 같은 매수시도가 없고 노조의 자주성이 공고해진 환경이라면 어떤가.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제도는 그 소명을 다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호주제가 폐지된 것처럼. 오늘의 우리 사회 노동환경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자명하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더욱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현행보다도 한참 퇴보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필자는 지금까지 노조법의 명시적 허용 규정은 없었지만 사업장 수준에서의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했음을 언급했었다. 현재의 교섭방법은 어떤가. 분명 자율교섭이다. 개별 사업장에 수 개의 노조가 있더라도 교섭창구 단일화와 같이 교섭방법 강제는 없었다. 오히려 산별교섭이나 대각선형태의 교섭도 널리 이루어졌다. 물론 이 같은 자유로운 교섭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은 들어본 적은 없다. 노·사 비용이 증가해 회사운영이 어렵다거나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에 훼손이 있다는 것들 말이다.



결국 현행 교섭방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법은 창구단일화를 강제하고 있다.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시행은 명백한 퇴보다. 노·사 자율 정신이 정부에 의한 통제로 회귀하고 있다. 그럼에도 입법자는 너무나 무지했다. 지금이라도 자율교섭 방식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분명하다면 그대로 둬야 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행 예정인 제도의 핵심은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가 아니라 창구단일화다. 간혹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큰 은혜를 베푸는 대신 어느 정도 제약은 감수하라”는 논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실질적 의미에서의 복수노조는 현재도 가능하고 더군다나 노조설립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창구단일화 과정을 시험해 본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창구단일화제도는 전적으로 사용자를 위한 것이다. 우선 창구단일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사용자는 교섭에 응할 필요가 없다. 사용자 편에 선 노조가 창구단일화에 훼방을 논다면 여타 노조는 교섭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용자로서는 조합원 수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것이다. 다수 노조 간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용자는 그만큼 편해질(?) 것이다.



창구단일화의 핵심 논리인 비용절감도 거짓이다. 교섭비용도 엄청나게 증가한다. 조합원 수, 교섭대표노조 확정, 공정대표 의무와 관련된 사건 폭증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 그 결과 노동위원회 사무도 늘어나게 된다. 노·사 관계에 관한 비용이 전체적으로 폭증할 것이다. 새로운 사업영역을 반길 이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라 살림에 도움이 될까. 가장 기초적인 얘기지만 노조가 창구단일화 절차를 모두 숙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변호사나 노무사라는 법률전문가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학습량이다. 창구단일화를 위해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노조가 증가할 것이다. 물론 그 비용 또한 조합원들의 몫이다.



결국 창구단일화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정작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노·사의 핵심 의제가 주변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창구단일화가 그 자리를 꿰차는 형국이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포장 뒤엔 어마어마한 함정이 있다. 창구단일화를 통한 사용자와 정부의 전면적인 노조활동 통제다. 이 같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물론 그 주체는 노조측이다. 전체 노조 연대가 그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연대에 장애가 되는 편견도 있다. 복수노조가 기존 노조 간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요컨대 복수노조 시행은 결단코 기존 노조의 영역확대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200만이 채 안 되는 기성 조직간 힘겨루기가 아니라 2천만 미조직 노동자를 훨씬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게 됐다는데 의의가 있다. 덫에 빠지지 않고 더 많은 노동자를 위해 노조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연대해야 한다.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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