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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그 잔혹한 속내

목수정 2012.10.04 조회 수 1536 추천 수 0
[목수정의 파리통신]긴축, 그 잔혹한 속내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오랜만에 파리의 가을하늘이 맑았다. 지난 일요일, 이 청명한 날씨 속에 8만명이나 되는 파리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시위를 했다. 예상을 뒤엎은 많은 인파에 언론도 정부도 적잖이 뜨끔해 하는 분위기.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 있던 대규모 시위. 이날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새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긴축예산 거부다. 이 긴축예산은 올봄 사르코지가 서명하고 온, 유럽연합의 긴축조약에 근거한 것이기에 시위는 유럽조약 자체에 대한 불신과 올랑드 정부에 대한 불만까지 담고 있었다.

‘긴축’의 반대는 뭘까. ‘방만’(?) 그렇담, 유로존 자체가 위기로 휘청이고 국가재정이 적자에 허덕이는 이 상황에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거. 좋은 거 아닌가? 언뜻 그럴싸하다. 그런데 이게 한 집안 얘기가 아니라, 한 나라의 정부 단위로 옮겨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돈을 안 쓰겠다는 건, 결국 공공부문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공공부문이 강화돼야 최소한의 복지가 가능해지고, 불평등이 해소되며 고용이 확대되고 더불어 사회불안이 제거된다. 실업인구가 300만을 넘어선 지금 상황에서 긴축은 곧바로 공공부문의 인력 감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공공부문이 사라진 영역은 오로지 이윤창출을 모색하는 민간기업들이 점유해 버린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이미 ‘긴축’은 사르코지 때부터 해왔다. 그런데도 국가재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올랑드 대통령은 사르코지가 지난 3월 서명한 예산 조약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이행하려고 한다. “봄에 뽑아줬더니, 가을에 우릴 배반하네”라는 슬로건이 나올 법한 시추에이션인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주말 시위가 있기 며칠 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도 똑같이 긴축을 선언하는 정부를 향한 격렬한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그리스 정부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내년 예산을 16조5000억원 줄이겠다고 발표하자 민심은 폭발했다. 스페인에서도 내년 예산을 56조원 줄인다는 긴축안 발표를 앞두고 거센 시위가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의 긴축 규모는 45조원이다. 목말라 죽겠다는 사람의 목을 제대로 조여 주겠다고 달려드는 이, 엄청난 규모의 긴축이 국가재정 적자를 해소하기도 전에 서민층은 꼬꾸라진다는 걸 정녕 그들은 모른다는 건지.

이번 시위를 주도한 좌파당의 대표 멜랑숑은 오늘의 시위가 “이미 긴축을 반대하고 있는 나라들의 운동에 프랑스가 가세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하며, 프랑스의 반대가 새로운 형태의 유럽 건설을 위한 논의를 열어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미 우리나라도 익히 겪어본 바 아니던가.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여해 망해가는 은행과 대기업들을 살리고,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직원들을 대거 해고하며, 온갖 공공영역이 민영화되면서 한국 사회를 양극화 사회로 고착시키고 만 그 뼈아픈 사연을. 그리고 3~4년 전, 복지국가이자 성평등 사회의 대명사이던 아이슬란드가 국가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것을 기억하시는가. 그들이 3~4년이 지난 지금, 신자유주의화라는 사약을 삼키지 않고도 멋지게 자력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는 소식을 언론은 들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안을 차갑게 뿌리쳤다. 은행을 공적자금으로 구제하지 않았고 망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들은 권력을 손에 다시 쥐었고, 과거의 위기는 청산했으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위기란 단어는 약한 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러나 가장 먼저 누웠던 풀이 가장 먼저 일어서기도 한다. 노름빚을 청산하기 위해 반드시 식구들을 굶겨야 할 필요가 없다는 소식은 바람을 따라 더 멀리 퍼져간다. 이제, 더 많은 풀들이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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