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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3년, 한상균 쌍용차노조위원장 눈물의 출소

오늘 2012.08.05 조회 수 1017 추천 수 0

쌍용차 노조위원장 눈물의 출소… 그 3년 동안 22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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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2009년 ‘불법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지 꼭 3년 만이다. 경기도 화성직업교도소 문 앞은 그를 보기 위해 달려온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 300여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환영객들의 인파를 예상 못한 듯, 한 전 지부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하얀 두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 전 지부장에게 두부를 건네는 대신, 있는 힘껏 교도소를 향해 두부를 던졌다. 두부를 먹어할 사람은 죄 없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교도소 정문 앞에 마련된 무대에 선 한 전 지부장은 “매 순간순간 동지들을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시간이었다”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한껏 야윈 그의 얼굴, 까만 그의 눈이 지난 3년의 시간을 말없이 증언하는 듯 했다.

 

환영행사에 이어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조합원들이 하루 종일 정성들여 삶았다는 닭고기 수육과 새빨간 김치, 두부김치와 수박 등이 막걸리·소주와 기분 좋게 어우러졌다. 한 전 지부장은 일일이 자리를 돌며 인사를 나눴다. 그는 공장 정문 앞에서 20여 분간 진행된 언론들과 공동 인터뷰에서 “맨 정신으로 견디기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었다”며 “사측에서 이제는 결단을 좀 해야(한다)”고 말했다.

 

-출소하신 소감을 먼저 말씀해 달라.

 

“지나고 보니까 지난 시간은 사실 금세 지난 것 같다. 여러 가지로 힘들어 하는 동지들 곁으로 올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활력을 찾고 행복하다는 것을 벌써 이 짧은 시간에 느꼈다고 하면 그게 답일 것 같다.”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을 들었을 때 심경은 어땠나.

 

“맨 정신으로 견디기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었다. 오히려 밖에 있었으면 눈으로 보고 느꼈을 텐데, (눈으로) 보지 못하는 심정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매일매일 신문을 들춰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굉장히 무서웠다. 배달이 오면 한참 뒤에 뒤져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런 시간들이 지속됐다.

 

독방에 있으면서 혼자서 여러 가지 추모 행위들을 하는 게 거의 매일 일상이었다. 그 것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대해 (배웠다.) 징역 좀 살다 보니까. 또 많은 동지들이 분에 넘치게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3년을 그런 정말 처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정신으로 나온 게 좀 (신기할 정도다). 아마 검진 받아보면 제정신은 아닐 거다. (동지들 덕분에) 현재 모습은 제정신으로 서 있는 것 같다.”

 

- 작년에 희망버스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다. 어떻게 보셨나.

 

“희망버스를 보면서 저 역시도 희망에 대한 간절함을 담아 보냈었다. 이 사회의 연대가 결국 현재 침체되어 있는 운동들을 결코 그대로 좌시하지 않고, 함께 꽃을 피우려고 하는 자발적인 노력들은 대단한 우리 사회에서 큰 진전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연대의 폭이 넓어지면서 정권과 자본들이 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동자 죽이기들을 다시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8·6합의가 3년 동안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그 때 당시 노동자들이 엄청난 많은 아픔을 가진 상태에서 합의를 했지 않나. 그랬기 때문에 정말 이렇게 하리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잉크도 마르기 전에 모든 사항들을 다 어기고 갔기 때문에, 회사 스스로 ‘자본의 본질이 이런 거다’ 하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었다. 다 어겼지 않나. 쌍용차는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권이 개입한 이후로 변해가는 이런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역시 천박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정치권의 쌍용차 문제 해결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정치권을 떠나서 전체적으로 쌍차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 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소중한 동지들이 간 것, 그 자체만 가지고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의 본질은 정리해고라는, 자본이 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언제든지 상생의 조건이 아니라 갑과 을이고 노예여야 한다는 이런 자본의 본질들이 뚜렷하게 있다. 균형자·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노골적으로 기업의 편을 들면서 노동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합법적인 파업을 할 수 없는 조건들이 있다. 대한민국 노동조합 파괴하는 건 이제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이런 것들을 바꿔 나가는 게 앞으로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로 조합으로 복귀하나. 앞으로의 계획은?

 

“비밀이다. (웃음)”

 

-(2009년 당시) 파업을 접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껴안고 나오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때의 심정이 어땠나.

 

“지금도 또렷하다. 어떻게 말로 가볍게 표현하기는 어려운 조건들이 중첩되어 있었다. 그 때 당시 조합원 한 분 한 분들이 단순한 생계의 문제 때문에 그 험한 시간들을 견뎠다고 보지 않았다. 노동자이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싶었고, 그래서 가장으로서 역할도 당당하고 싶었지만 그런 것들이 철저하게 짓이겨진 상태에 대한 (분노의) 힘으로 조합원들이 77일을 견뎠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그 부족한 투쟁력을 배우면서 그 시간들을 함께 해 왔다. 그런 것에 대한 조합원들에게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이런 것들이 중첩되어서 당시에 동지들을 보냈다. 상황이 그 이후로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진행될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바로 유치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허리 디스크로 수술하셨다. 징역을 살면서 3년 동안 가지고 나온 가장 큰 보물이 하나 있다. 팔순 어머님이 저한테 태어나서 처음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맞춤법은 아주 옛날식이지만 마음으로, 가슴으로 쓰셨기 때문에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힘들 때 그것을 꺼내서 읽어봤다. 그 편지는 제 삶과 함께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님한테 효도하는 시간들을 좀 가지려고 한다.”

 

-등 뒤로 공장이 있다. 3년 만에 보는 공장인데.

 

“안에는 노동자들이 훨씬 더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조건들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희망이 희망이 되지 못하고 희망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런 현실들을, 그 상처들을 메울 수 있는 건 정말 사측에서 이제는 결단을 좀 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희망퇴직자, 정리해고자, 징계해고자 할 것 없이 모두들 내가 청춘을 바친 공장에 다시금 볼트를 조이고, 차를 만들고, 함께 퇴근길에 동료들과 해장국을 먹고 싶은 그런 마음들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꺾이지 않는 신념들로 답변을 마감할까 한다.”

 

-첫 아침에는 뭘 하실 계획인가.

 

“오늘 이렇게 화성교도소 앞에서 출소 행사가 크게 있을 줄을 몰랐다. 전혀 몰랐다. 우리 조합원 동지들 몇 분 오셔서 서로 위로하고 또 내려와서 뒤풀이하고 끝난다고만 이야기를 들어서 부담 없이 나왔는데 플래시가 하도 터져서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없다. (웃음) 본래 계획대로라면 바로 대한문으로 가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이후 일정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좀 생긴 것 같다. 지도부 동지들과 함께 논의해서 동지들 뜻에 따라서 움직일 계획이다.”

 

-가족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굉장히 가족들한테는 미안하다. 또 이 운동을 하면서 조금 더 가족들을 돌아보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들이 너무 많이 길었다. 3년 동안 기다려준 것만으로도 이건 큰 절을 몇 번 해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다. 그리고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한 번도 챙겨주지 못한 딸과 아들이 있는데, 그래도 굴곡 없이 밝게 자라주고 있어서 그걸로 아빠가 힘을 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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