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인물과 노동조합 3 (바뵈프 2)

제2발 2012.03.15 조회 수 858 추천 수 0

 

최초의 공산주의자 바뵈프 2

 

 

프랑스에서 다가오는 혁명을 위해 사람들을 깨우쳐 주던 위대한 인물들은 스스로 혁명적인 행동을 하였다. 그들은 모든 외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서 종교, 자연관, 사회, 국가제도 등 그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하였다. 모든 것들은 이성의 심판대에 세워졌다. 과거의 모든 사회형태와 국가 형태 그리고 모든 전통적 관념은 불합리한 것으로 인정되어 쓰레기 통으로 던져졌다. 이성이 왕국이 태어나면서 미신, 부정, 특권, 압박은 진리, 정의, 평등, 인권에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성의 왕국이란 부르주아 왕국의 이성화에 지나지 않았다. 정의는 부르주아 법질서로 실현되고 평등은 법률 앞에서의 부르주아적 평등이었고 인권은 부르주아적 소유였다. 이성 국가는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위대한 사상가들도 시대가 설정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이 비록 봉건제에 대항한 부르주아지들의 투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지만 봉건귀족과 부르주아 사이의 대립과 아울러 착취자와 피착취자, 부자와 빈자 사이의 일반적인 대립도 혼재하여 있었다. 다만 부르주아지가 당시에 고통 받는 모든 계급의 대표자로 나선 것뿐이었다. 그 모든 계급의 대표자인 부르주아지는 내부에 자신이 착취해야 할 대립물인 노동자를 내포하고 있었다. 중세시대 동업조합의 장인이 부르주아로 발전했다면 동업조합의 직인과 날품팔이는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부르주아 투쟁의 발전 속에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도 같이 성장해갔다. 독일 농민혁명 당시의 종교개혁과 함께 토마스 뮌쩌의 운동, 영국 대혁명 당시의 수평파 운동, 프랑스대혁명과 바뵈프 운동의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미숙단계에 있는 이런 피착취계급의 혁명적 무장봉기에는 이에 상응하는 이론이 뒤따랐다. 18세기에 이르러 모렐리와 마블리의 공산주의 이론이 나타나 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평등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 지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권뿐만 아니라 계급 자체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 공산주의 이론은 모든 향락을 금하는 금욕적 스파르타식 공산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어서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역사적으로 발생한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로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계몽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사회계급을 해방하려 하지 않고 인류 모두를 해방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몽 사상가들의 부르주아 체제 또한 봉건제와 마찬가지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으로 이것 또한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진리가 바르게 인식되기만 하면 참된 이성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의 주장은 비역사적이고 비경제적이었다.

 

혁명을 준비하고 있던 18세기 철학자들은 유일한 심판자로 이성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 영원한 이성이란 당시 부르주아로 발전하고 있었던 중산 시민의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이성사회와 이성국가가 이룩되었을 때 매우 합리적이기는 하였지만 절대 이성적인 것은 아니었고 이성 국가는 파산하였다. 자기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믿지 못한 부르주아지는 처음에는 집정 정부를 매수하고 나중에는 나폴레옹 전제 정치를 비호하는 데서 피난처를 구했다.

 

빈부의 대립은 점점 첨예해졌고 이 대립을 완화하던 교회의 자선시설은 폐지되었다. 봉건적 질곡으로부터 소유의 자유가 이루어졌지만 농민이나 소부르주아들은 경쟁에 압도되어 자신들의 조그만 재산을 대자본과 대지주에게 넘겨야 했다. 공업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노동자의 가난과 궁핍은 사회 존립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범죄는 늘어갔고 비밀스러운 부르주아적 죄가 더 성행하게 되었다. 상업은 사기가 되어 갔고 박애라는 혁명 표어는 경쟁에서 사기와 질투로 실현되었다. 폭력적 억압대신 매수가, 칼 대신 돈이 사회 권력의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되었다. 초야권은 봉건영주에게서 공장주로 넘어갔고 매음이 번창하였다. 결혼은 법적으로 승인된 매음이었고 무수한 간통으로 보충되었다.

 

당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대립은 아직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영국에서 대공업이 생겨났고 프랑스에는 아직 없었다. 프랑스혁명에서 한 때 파리의 무산대중이 권력을 잡기는 하였으나 오랫동안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당시 노동자 계급은 일반 무산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정치행동을 할 수 없었다.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초기 사회주의 창시자들의 관점은 바로 미숙한 자본주의 발달상태와 미숙한 계급관계에 상응하여 미숙한 이론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과제의 해결책은 머리속에서 꾸며졌으며 그것이 바로 공상적 사회주의가 되었다.

 

참고자료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엥겔스 1880] 대부분 인용

[프랑스 대혁명사, 알베르 소부울] 일부 인용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일부 인용

 

0개의 댓글

Profile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647 고리원자력 사고 긴급 기자회견 에너지정의 2012.03.14 889 0
3646 정년연장 4 쓴소리 2012.03.14 1630 0
3645 고리원자력 사고가 주는 교훈 노동자 2012.03.14 1050 0
3644 내가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이유 박노자 2012.03.14 813 0
인물과 노동조합 3 (바뵈프 2) 제2발 2012.03.15 858 0
3642 전원이 끊기면 원자폭탄으로 돌변하는 원전 후쿠시마 2012.03.15 805 0
3641 발전노조 파괴공작에 개입한 정황 11 용기백배 2012.03.15 1322 0
3640 보령화력..무슨일이 1 경향 2012.03.16 1530 0
3639 인물과 노동조합 4 (맑스) 제2발 2012.03.16 911 0
3638 간만에.... 싫어 2012.03.16 746 0
3637 표리부동 5 중부본부 2012.03.16 1166 0
3636 왜들그래.... 성과관리 2012.03.16 856 0
3635 한수원 사장도 모르고 있었던 고리원전 사고 노동자 2012.03.16 1037 0
3634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 안효상 2012.03.16 813 0
3633 준석이 뭐하고 자빠졌냐? 6 보령인 2012.03.16 1496 0
3632 5조3교대제 변경과 정년연장 도입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이상봉 2012.03.17 1184 0
3631 성과관리제 위험하네요(서울지하철 노동자사례) 2 노동자 2012.03.18 974 0
3630 남부노조임원이 발전조합원에게 인사상불이익으로 협박했다느데/// 8 단결의힘 2012.03.18 1513 0
3629 2012단체협약 체결 법률점검 - 노조요구안을 중심으로 1 노동법률원새날 2012.03.18 851 0
3628 인물과 노동조합 5 ( 레닌 1 ) 제2발 2012.03.19 898 0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