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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평) 진보가 부끄럽다

손호철 2012.05.14 조회 수 968 추천 수 0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살다보면 어떤 사건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인 통합진보당 사태가 그러하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 군사독재에 저항하다가 투옥·제적·강제징집을 당한 일, 기자가 된 뒤 강제해직을 당해 유학을 떠나야 했던 시절, 교수가 된 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 등 궂은일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 정치의식을 가진 이후 개인적으로 “진보란 모든 억압, 착취, 차별, 배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진보적으로 살려 노력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말 내가 진보라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물론 진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인가 학생운동세력이 경찰 프락치를 잡아 심문을 한다며 고문해 죽인 것을 보면서 너무도 부끄러웠다. 또 진보세력의 다수파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할 때, 탈북자들의 인권을 두고 보수 정치인이 단식농성을 하는데도 진보라는 사람들이 침묵할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만큼 부끄럽지는 않았다. 이승만 시대를 연상하는 부정선거도 선거지만,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궤변으로 정당화하려는 경기동부연합 등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는 정말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아니 여러 표가 한꺼번에 붙어서 나온 몰표에 대해 ‘풀이 다시 붙었기 때문인지 모르지 않느냐’고 답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진보의 대표이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라니, 믿고 싶지가 않다. 정말 진보가 저런 것이라면, “나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서울광장에 나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부정 시비가 이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론에 대해 진성당원제도를 내세워 당원투표를 하자는 당권파의 논리도 그러하다. 비례대표에 당선시켜준 것, 통합진보당이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도록 만들어준 것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당원들이 아니라 그들의 수십배에 달하는 200만의 유권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비분강개를 넘어서 정작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같은 괴물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야만에 대항해 싸운다는 이름 아래 적을 닮아가 적보다 더 흉악한 괴물이 되고만 스탈린주의의 비극처럼 군사독재와 광주의 비극은 적과 싸운다는 이름 아래 ‘적보다 더 흉물스러운 괴물’을 진보진영 속에 만들어내고 만 것이 아닌가? 최소한 이승만 정권도 몰표에 대해 풀이 다시 붙어서 그랬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진보를 자처해온 사람으로서 진짜 부끄러운 것은 이처럼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준 사이비 종교집단’들이 진보를 대표하는 다수가 되도록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그들이 지역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조직하고 힘을 키우고 있을 때 소위 ‘건전한 진보세력들’은 세미나 룸에서 고상한 논쟁만 하고 있었던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낳은 것이 아닌가? 사실 민주노총, 나아가 진보언론을 포함한 언론조차도 다 알려진 이들의 패권주의적 행태에 대해 그동안 침묵함으로써 현재에 이르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번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일부 보수언론들이 보여주듯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 소위 ‘종북주의’를 이유로 공안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들의 비민주적 관행과 패권주의가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인 종북주의와 상당한 관련이 있지만, 이번 사태에 공안적으로 대응하는 경우 ‘비상식 집단’을 다시 한번 반북주의와 공안정치의 희생자 내지 순교자로 만들어줄 우려가 있다. 이번 사태의 단기적 해결을 넘어서 ‘왜곡된 진보정당’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건전한 진보’ ‘진정한 진보’가 힘을 기르는 한편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언론이 현재와 같은 강자 중심 보도방식을 넘어서 다양한 진보세력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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