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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의 고리를 풀려면

강신준 2012.05.03 조회 수 1366 추천 수 0

[경제와 세상]  노동시간 단축의 고리를 풀려면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
 
“지금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인간적 조건의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비인간적인 조건의 회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이상한 시대에 와 있다.” 1996년 프랑스 독서계를 강타한 비비안 포레스테의 책 <경제적 공포>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에 대량실업 사태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공포감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 글이 문득 떠오른 것은 올해의 단체교섭에서 주요한 의제로 떠오른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이 글의 표현과 매우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OECD 최고의 장시간 노동이라는 불명예를 10년 넘게 견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2005년 현대자동차 노사가 교대제 변경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후 많은 논의를 거치면서도 이 문제는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결국 올해에는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그것이 기존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논의에서 답보상태의 원인은 이미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임금이 노동시간과 연동되어 있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임금이 줄어들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조합인 것처럼 보인다. 비비안 포레스테의 말처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조건을 고집하는 이상한 시대의 모습을 여기에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논리적 악순환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명백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 독일과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비교해보면 그 해답의 단서가 드러난다. 2008년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1352시간, 미국은 1797시간인 데 반해 시간당 임금은 독일이 37달러, 미국은 24달러이다. 노동시간과 시간당 임금을 곱해보면 노동자들의 연간 임금총액이 산출되는데 독일은 약 5만달러, 미국은 4만3000달러에 불과하다. 노동시간이 더 짧은 독일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의 진상은 이렇다. 시급제일 경우 임금은 분명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당 임금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그러하다. 독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미국 노동자들에 비해 25%나 적은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임금총액이 16%나 더 높은 것은 바로 시간당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시간당 임금에 있다. 그런데 경제학 교과서에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격이며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쓰여 있다. 따라서 다른 조건을 무시한다면 노동력 공급자의 교섭력이 높으면 임금은 높아지게 된다. 독일은 미국에 비해 노동력의 공급자인 노동조합이 훨씬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당 임금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조직력은 노동시간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교육이나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시간과 임금간의 악순환 고리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서 곧바로 끊을 수 있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노동조합을 활성화시켜 교섭력을 높이면 시간당 임금이 높아져서 추가적인 노동시간 단축의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1994년 독일 폭스바겐사의 노동시간 단축이 16%의 임금삭감을 노동조합이 감수하면서 이루어졌고 현재 독일의 노동시간계좌제에서 일정 수준을 넘는 노동시간에 대해 임금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임금과 노동시간의 고리를 끊기 위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독일 노동자들이 지금 먹고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의 성서, 마르크스의 <자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해방의 역사이고 그 해방은 바로 노동시간의 단축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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