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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이유

박노자 2012.03.14 조회 수 813 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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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이유

 

며칠 전에 제가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 이번 총선에 출마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상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체감해왔습니다. 언론 인터뷰 등 일부 집에서 하는 경우가 생겨서, 거의 20년 동안 "글"에 빠져 가사를 소홀히 해온 비가정적인 남편을 어렵게 참아온 아내의 불평부터 들렸습니다.

 

"글"을 위주로 해온 비가정적인 생활적 태도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그 불평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일부(국내) 학계 동료들의 다소 냉소적인 반응입니다. "너도 인제 본업을 박차고 정치질 할래? 폴리페서 대열은 늘게 생겼다".

 

마르크스부터 강만길 선생님이나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선생님까지, "본업"과 (진보적인) "정치질"을 훌륭하게 겸업해온 선배들의 이름을 나열하려면 끝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 개인 입장의 "석명"은 아닙니다. "정치", 그리고 소위 "지식인"의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할 듯합니다.

 

정치란, 꼭 "정당"이나 "국회"에만 있지 않습니다. 정치는, 한 사회에서의 권력관계의 총칭입니다. 모든 자본주의적 사회들이 권력관계로 이루어진 위계질서로 돼 있는 이상, 그 안에서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각의 국내 동료 분들께서 "고고한 진리 탐구"의 이상을 내세워 저의 "출마질"을 냉소할 수 있지만, (국내 학위나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 대학에서 따온 학위가 아닌) 미국 박사 학위 소지자가 최우선적으로 국내에서 "교수"로 채용되어 그 뒤로는 영어 논문을 생산해 구미학계에 유포시키는 것을 최우선적 의무로 삼고 있는 것은 과연 "정치"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 행위의 바탕에는, 국내 학계가 미국 (내지 구미) 학계에 종속돼야 한다는 국내 지배층의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상아탑"으로부터 배제된, 충분히 자기 자신을 미국화시키지 못한(않은) 연구자들은 "진리 탐구" 대신에 최저생계비도 건지기 어려운, 6개월 후부터가 불확실한 강의노동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차별이야말로 국내 (보수) 정치의 본질은 아닌가요? 고고한 척하는 거야 개개인의 자유지만, 학계에서야말로 (특히 고급) 구성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극도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이 그것까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성찰력을 보유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죠.

 

국외학계라고 해서 본격적인 차이는 전혀 없습니다. 한국학하는 저는 유럽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반면, 월남학하는 동료는 유럽에서 직장을 찾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월남이 조선보다 그 역사나 문화가 덜 재미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월남전쟁 때에 미제에 병력자원(?)과 후방지원 등을 비싸게 판 남한이 "나리킨"(成り金) 되어서 인제는 돈을 풀어 외국에서 교수직을 신설시키고 대중문화를 해외 수출함으로써 학생 유치에 도움 줄 만큼 "힘"을 가진 반면, 전장이 돼버린 월남이 지금 부득불 남한 등 해외 기업들의 경제적인 "準식민지"가 되어서 해외 월남학을 "진흥"할 만한 여력을 보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정치" 아니면 무엇입니까? 모스크바 국립대의 최종 학위를 가진 제가 지금 아늑한 연구실에서 블로그질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반면, (노르웨이 당국에 의해서 잘 인정되어지지 않는) 바그다드대나 테헤란대, 모가디슈대 출신들이 이 대학의 복도를 청소해야 한다는 것도 "정치"는 아닌가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삶 전체가 정치에 의해서 규정됩니다. 배제와 차별의 구조 안에서는 우리는 피해자나 가해자, 기득권층이나 소외층으로 규정되어, 그 규정에 의해서 사고와 생활패턴을 만들어나갑니다.

 

결국 문제는, 가해자/기득권층 위주의 기존의 질서에 맞서고 있는 피해자들과 연대할 수 있느냐 라는 부분입니다. 그렇게 연대할 수 있다면 기득권층의 구성원이 된 죄과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용서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결국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구질서의 파수꾼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고고한 척해도요.

 

진보신당이란 무엇입니까? 몇 개 "의석"을 차지해야 할 (제도 안의) "정당"이기에 앞서서, 일차적으로 이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이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온 마음으로 인식한 "생각하는 피해대중"들의 모임입니다.

 

이들 중에서는 강정마을을 지키려다가 연행되어 고충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고, 시간과 자원을 들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면서 투쟁하는 이들도 있고, 희망버스를 탔다가 인제 경찰과 검찰의 체계적인 이지메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고, 그냥 그저 창조적인 노동을 하면서 연애라도 하고 싶어도 현체제 하에서는 연애도 창조적인 삶도 포기하여 구직 전선에서 고투를 거듭해야 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각자의 저항에의 입문의 동기가 다르고 각자의 생각도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체제 변혁에 대한 의식의 정도에 있어서도 각자 여러 차이를 보이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이윤 추구에 정신이 나간 극소수가 절대 다수를 무리한 초장시간 노동과 세계 최고의 산재율에 시달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가계빚 피라미드에 시달리는 우마로 만들고 있는 이 정신병원을, 다들 평등하고 화목하게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개조하고자 하는 점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야 상호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지향을 공유하는 이상 우리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역사의 논리를 이해하려는 "지식인"이라면, 사회를 오늘날의 비참한 상태에서 다수의 평화스럽고 행복한 연대가 가능한 보다 나은 상태로 이끌 수 있는 "변혁 주체"의 편에 서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게 오히려 도덕적 의무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제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느냐는 건, 제게 전혀 관심사는 아닙니다. 제게 희망사항이 있다면, 진보신당의 다른 당원들과 함께 노동 착취의 정도만 자꾸 높이고 군비와 군사기지의 수만 자꾸 늘리는, 자살률과 영세사업자들의 파산률만이 자꾸 초고속 성장되는 이 지옥같은 대한민국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개인 왕국과 같은 독재국가형 대기업과 반인간적인 징병제 군대, 비정규직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인상되는 대학 등록금, 기업처럼 영리만 추구하는 병원들과 입시 공포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없는, 조금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같이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연단"으로서 국회도 이용가치가 있지만, 이 투쟁의 중심이 될 곳은 결국 일터와 거리, 광장, 그리고 여론을 형성하는 인터넷 공간이 될 것이라고 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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