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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노동이 빠진 복지 논의

강신준 2012.03.09 조회 수 725 추천 수 0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문제로 촉발되어 올해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복지 논의도 이제는 그 밑천을 거의 다 드러낸 것 같다.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서 발언할 만한 사람은 거의 모두 등장한 것 같고 그들이 얘기할 수 있는 내용도 거의 다 쏟아낸 것 같기 때문이다. 필자는 복지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오를 자격은 없지만 관중석에서 보고 있노라니 이제쯤 한 마디 관전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존의 복지 논의에서 암묵리에 합의되고 있는 전제와 관련된 것이다. 즉 보편복지, 선별복지, 부자 증세, 토목세출 감축 등 복지 범위와 재원 마련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논의는 모두 복지의 주체가 국가이며 복지 대상이 일반 국민이라는 공통된 전제 위에 서 있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전제에는 그러나 중요한 함정이 하나 숨겨져 있다. 그것이 어떤 함정인지를 밝힌 것은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의 <자본>에는 사회정책학파라는 독일의 관변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이 바로 복지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학자들이었다. 오늘날 복지정책을 사회정책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바로 이들 때문이다. 애초 이 학파의 등장은 마르크스를 따르는 노동운동이 독일에서 급격히 성장하자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독일의 자본가와 국가가 이에 공동으로 대응하려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학파의 정치적 목표는 분명하였다.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단순한 것이었다. 노동운동이 문제로 삼는 노동자들의 빈곤이 자본주의에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늘 존재해 오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사실 빈곤 그 자체는 인류사에서 계속 존재하던 것이었다. 빈곤은 대개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따라서 그것의 해결주체는 범속한 인간들을 초월한 존재라야만 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황제가, 중세에는 교회가, 절대주의 시기에는 절대군주가 이 문제를 떠맡았다. 사회정책학파는 이제 자본주의에서 이 역할을 국가가 떠맡음으로써 자본주의의 빈곤을 자본주의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고 노동운동을 이 문제로부터 분리시키려 한 것이었다. 이 문제가 노동운동으로부터 분리되면 자본주의 개혁이라는 사회적 의제도 소멸하고 자본주의는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의도는 관철되지 못하였다. 마르크스라는 복병을 만났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통해 바로 이 빈곤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며 자본주의에서만 특수하게 나타나는 ‘노동빈곤’이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혀내었다. 그리고 이 빈곤은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것이며 자본주의를 개혁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밝혔다. 따라서 이 문제의 대상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며 해결 주체도 국가가 아니라 노동계급 자신이라는 점을 마르크스는 분명히 하였다.

마르크스의 폭로에 힘입어 유럽 노동운동은 사회정책학파가 주도한 복지논의의 꼼수에 현혹되지 않고 자본주의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나갔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였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의 복지 논의 무대에서는 그동안 노동운동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복지 논의의 함정에 대한 마르크스의 교훈도 역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과 마르크스가 모두 빠진 채로 진행되고 있는 복지 논의는 우려스럽고 또한 사회정책학파의 유령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개혁에서 마르크스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이 개혁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은 이처럼 복지 논의에서 다시 확인된다. 그래서 또 다시 마르크스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을 만나게 된다. 거기가 곧 자본주의 개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여기가 바로 로도스 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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