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21세기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이 글은 정성진(1991), (1997), (2001)을 보완한 것이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교수, 경제학)

Ⅰ. 머리말
오늘 세계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진보진영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와 같은 거대담론의 사용을
기피해 왔다. 거기에는 소련·동유럽 블록 붕괴 이후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 정보화 풍조가 한 몫을 했다. 이런 와중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개념은
오늘 지배이데올로그들의 병기고로 환수되고 말았다. 

20여년전만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자본주의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불온시되었다.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세계라고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지배계급은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라든지 ‘자유세계’,
혹은 ‘현대사회’ 등으로 부르기를 요구했다. 그 당시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은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민중과 비판적 지식인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터부시했던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들이 오늘은
대놓고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예컨대 국제금융자본의 대명사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얼마 전 출판된 자신의 책 제목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라고 달 정도였다. 자본가들이 기업의 목표가 국부나 공익 증진이 아니라
사적 수익의 극대화에 있다고 거리낌없이 천명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는 아마도 소련·동유럽 블록이 붕괴된 다음 자본가들의 자신감이 강해진 때문일
것이다.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제’라고 하면 바로 빨갱이로 몰았던
지배이데올로그들이 스스로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구사하고 있다. 특히
탈냉전 후 미국의 지배이데올로그들은 “새로운 제국주의”(New Imperialism)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으며, 예컨대 미국의 대표적 지배이데올로그의 한 사람인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지 칼럼니스트 프리드만(T.Friedman)은 동지
1999년 3월 28일자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세계화 과정의 지속은 우리
국익에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이다. ... 세계화는 곧 미국이다.
(Globalization-is-U.S.) ...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맥도널드는 F-15 제조업체인 맥도넬 더글러스 (McDonnell
Douglas) 없이는 번창할 수 없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기술을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미 육군과 공군, 해군과 해병대이다.”
(강조는 필자)
 이는 9.11 대미 테러 이후 완전히 노골화되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지배이데올로그들이 현체제의 자본주의적 본질과 제국주의적
수탈과 지배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는 마당에 일부 진보진영은 도리어
이 개념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것으로 치부하는 개탄스런 작풍을 정정하기
위해 쓰여졌다. 이 글에서 우리는 오늘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개념을 복권할 것이다. 즉 이 장에서 우리는 오늘 세계가
자본주의 세계인 동시에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불평등한 위계구조로서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이며, 구체적으로 미제국주의의 패권적인 세계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임을 확인할 것이다. 


Ⅱ. 자본주의의 개념과 현실

1. 자본주의의 개념
자본주의는 보통 시장경제라고 불린다. 그런데 시장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당나라 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시장은
존재했다. 하지만 당시 시장은 그 사회에 부분적으로만 존재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전 사회와 구별된다. 즉 시장 논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이다. 즉 상품화폐경제가 전면화된
사회가 자본주의이다.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또 돈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해진다. 돈으로 표시되는 가치를 가리켜 교환가치라고 한다. 인간에 대해 얼마나
유용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가장 우선적인 판단기준으로
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즉 자본주의는 다름 아니라 교환가치와
이윤증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자본주의는 그냥 시장경제가 아니고 ‘일반화된 시장경제’(generalized market
economy)인데, 이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뿐만 아니라 그 생산물을 만드는
인간의 노동력까지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즉 노동력을 사고 파는
노동시장이 형성된다는 것, 그리고 대다수 인간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받는
임금에 의존해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임금노동자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까닭은 노동자가 공장,
기계나 원료와 같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생산수단은 자본가가 독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즉 노동을 해서 받는 임금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가 획득하는 이윤의 원천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노동시키는 과정에서
자본가에게 공짜로 제공하는 잉여노동 즉 착취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봉건시대 영주가 농노에게 휘둘렀던
경제외적 강제와 같은 직접적 폭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노동자
자신이 자본가에게 찾아가 자신을 착취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도록 사회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 틀 내에서 노동자는 자본가로부터
일감을 받지 않고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 노동자는 가진 것이 자기의
노동력뿐이고 공장, 기계, 원료 등 다른 생산수단은 모두 자본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자본가가 휘두르는 어떤 경제외적 강제력, 폭력이 아니라,
가진 것이라곤 자기 육신 밖에 없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경제적 강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는 특유한 방식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또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시장의 논리는 돈벌이의
논리이고 경쟁의 논리이다. 오늘 경쟁은 자본가들 사이에서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항상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많은 시장을 확보하고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 경쟁은 한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 범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경쟁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격화되고 있다. 오늘 자본주의는 재벌과 독점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경쟁을 약화시키고 있다. 독점이 아니라 경쟁이 자본주의에 특유한 역동성과
불균등성,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특유한 무제한 경쟁은 어떤 합리적 원리나 기구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 특유한 생산의 무정부성이 결과된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적 경제의 무정부성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는 있지만 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임금노동 착취와
‘다수자본’(many capitals)간의 경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것이라곤 자기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계급과 이
노동자계급이 판매한 노동력을 착취하여 이윤을 획득하고 부를 증식하는
자본가계급 사이에 필연적으로 대립 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파업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인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간의 모순의 표현형태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적으로 특유한 사회이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 인류가 오래 전부터 원래 그렇게 살아 온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자본주의는 아무리 옛날로 소급해 보아도 지금부터 약
500년 전인 1492년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에야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그 후 상업혁명과 시민혁명 및 산업혁명을 거쳐 19세기 중반
이후 서유럽에서 확립되었으며 20세기 들어 와서야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또 비록 오늘은 자본주의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어 자본주의 이외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는 것은 몽상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가 성립한 이래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 보려는 진지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1989-1991년 소련·동유럽 블록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
이외 대안부재론’,  ‘역사의 종언론’ 등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적 승리가 구가되었던 지난 십여 년은 걸프전쟁에서 코소보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일본의 장기불황, 유럽의 구조적 실업, 시장경제로
전환한 러시아와 동유럽의 경제파탄,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등으로 점철된
갈등과 위기의 해들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태들이다. 실제로 1999년말 시애틀, 프라하, 퀘벡, 2001년 7월
제노바로 이어져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반세계화·반자본주의 운동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에 대한 전망이 다시 열리고 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를 불가피한 숙명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수한 체제, 그리고
유한한 체제, 따라서 거부될 수 있는 체제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역사발전의 특정한 단계에서 나타난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이며, 결코
인간 본성에 근거한 초역사적 체제가 아니다.

2. 자본주의로서의 현재 세계
오늘 지배계급이 현체제의 본질이 자본주의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시작하는
데도 1989-91년 소련·동유럽 블록의 몰락 후 스탈린주의에서 각종
포스트맑스주의로 전향한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소멸”, “디지털 혁명”
운운하면서 오늘 세계를 자본주의라고 명명하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세계화,
정보화에 미혹되어 현재 세계의 과거로부터의 연속성과 현재 세계에서 심화되고
있는 모순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일부 부르주아 학자들이 “맑스의
시계가 다시 가고 있다”거나, “맑스의 궁핍화론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맑스를 ‘죽은 개’로 취급하는 포스트맑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원조인 데리다(Derrida, 1994)가 왜 오늘 ‘맑스의 유령’이 다시
출몰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맑스가
정식화한 자본주의의 주요한 운동법칙들은 세계경제위기의 심화와 빈곤의 세계화,
세계적 양극화 현상 등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역사 그 어느 시기보다 더 분명하게
관철되고 있다.

1) 공황의 세계화
오늘 세계를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음은 맑스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강조했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오늘 세계에서 관철되고 있는
데서 확인된다.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경향 법칙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이윤을 창조하는 원천인 살아있는 노동자에 비해 ‘죽은 노동’ (기계, 원자재)의
비중이 증대하고 (이를 가리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고 한다), 그 결과
이윤율 (이는 이윤량을 투하자본으로 나눈 값이다)이 저하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맑스는 자본주의 경제에 특유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투자를 감소시켜 공황이
초래된다고 보았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 법칙은 맑스가 강조했듯이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주의가 지배했던 우리나라에서 맑스의 이
법칙은 오래 동안 좌파에서도 외면당해 왔다. 그러나 소련·동유럽 블록이 붕괴한
지 10여년이 지난 오늘, 그리고 세계경제위기가 새천년의 현안으로 되고 있는
오늘, 맑스의 이윤율 저하 법칙의 타당성이 재발견되고 있다. 

맑스의 이윤율의 저하 법칙의 관점에 설 경우 오늘 세계경제위기는 1965-73년 이후
시작된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
세계경제위기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늘 세계경제위기는 1965-73년 이후
시작된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1965-73년 이후
주요 선진국의 이윤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호황 시기 (‘황금시대’라고도
한다)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2차 세계대전 이후 1965-73년
시기까지 지속되었던 세계경제의 장기호황이 종식되었다. 1965-73년 이후 이윤율
저하는 노동자계급 투쟁이 초래한 임금상승=이윤압박 (착취율 저하) 때문이 아니라
맑스가 말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야기한 결과이다.

그런데 1965-73년 이후 시작되었던 주요 선진국의 이윤율 저하는 1980년대 접어
들면서 일단 중단되었다. 미국에서는 정확히 1982년 이후 이윤율이 저하를 멈추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는 주지하듯이 1980년대의 대서양 양안에서 레이건과 대처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반혁명의 효과였다. 즉 1980년대 들어 주요 선진국의
지배계급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등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통해
경제위기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그 결과 1970-95년 동안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이 절대적으로 저하하고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연장되는 등,
착취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와 같은 노동자 착취 강화에 힘입어 미국의 이윤율은
1982년 이후 부분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이윤율 회복은
미국과 독일, 일본 사이의 불균등발전, 특히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의 절상이 초래한 일본과 독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의 약화 및
달러화의 저평가에 따른 미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의 회복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Brenner, 2001). 1990년대 미국 경제의 회복은 일본과 유럽 경제의 침체를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특히 199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일부 논자들은
세계경제가 1965-73년 이후의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기호황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인터넷혁명론, 신경제론 등의 유행에 편승하여 기세를 얻는 듯 했다. 그래서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디지털혁명에 따라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이론들, 특히
가치론과 공황론이 적실성을 잃었다거나 혹은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IT 주가의 폭락과 신경제의 종언이 확연해진 오늘
그러한 주장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디지털혁명론의 나팔수였던 만델(M. Mandel)이 신경제의 붕괴 조짐이 완연해지자
발빠르게 ‘인터넷공황론’으로 돌아 선 것은 그 한 에피소드이다. 디지털혁명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기초한 산업순환의 필연성을 무효화시키지 못했다.
디지털혁명은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보듯이, 유통시간을 단축시키고 자본의
회전속도를 빠르게 하여 자본주의에 내재한 이윤율의 저하 경향에 대한 상쇄요인을
강화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혁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기본적 사회적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부를 생산하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들이고 이를 착취하여 갈라 먹는 것은 자본가와
금융업자들이다. 디지털혁명은 자본의 지배가 지리적 공간에서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자본의 지배가 이처럼
전면화되면서 인간의 삶의 모든 측면, 노동력의 재생산, 소비, 욕망 심지어
꿈까지도 상품과 시장의 논리에 포섭되고 있다. 

신경제론자들은 1990년대 미국 경제의 인플레 없는 고성장, 즉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의 동시달성을 근거로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배반관계를 골자로 하는
부르주아 거시경제학의 기본 명제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0년대 미국이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은 조금도
신기한 현상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물가안정은 상당 부분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및 199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이들 나라에서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이루어진 대미 수출품의 가격 하락 덕분이었다. 그리고 4%의 낮은
실업률 운운하지만 클린턴 집권 시기 늘어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저임금
비정규직종이었다.

또 1990년대 후반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는 불황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과 제3세계에 불황과 실업의 고통을 전가함으로써만
자국의 호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구조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갈수록 ‘제로썸’(zero-sum) 게임의 양상을 띠어 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65-73년에 이르는 장기호황 시기처럼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나라들이 동시에
호황을 구가했던 ‘양합’(positive-sum) 게임은 이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먼
옛날의 추억으로 되어 버렸다.

1982년 이후 시작되었던 미국의 이윤율의 상승은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와
잇따른 러시아 및 브라질의 경제위기 이후 중단되었다. 그래서 1997년은 1982년
이후 상승했던 미국의 이윤율이 정점에 도달한 해로 기록된다. 1997년부터 미국의
이윤율은 다시 저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부터 이윤율이 다시 저하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스닥 지수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관련 주들의 주가는 폭등했다. 또 1997-9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세계의 유휴화폐자본의 미국 유입이 가속되었다. 1997-2000년 미국의 신경제
호황은 이를 기초로 한 것이다. 1997년 이후 신경제 호황은 무엇보다 이윤율이
저하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1965-73년 시기의
장기호황과 구별된다. 1997년 이후 미국 경제의 호황은 높은 주가가 부추긴
‘자산효과’(wealth effect) 그리고 민간부채의 증가에 기초한 소비지출 증대 및
전세계 유휴화폐자본의 미국으로의 집중에 기초한 성장이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거품 성장이었다. 따라서 실물경제의 이윤율 상승이 부재한 가운데 팽창한 거품의
붕괴와 그에 따른 성장의 중단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1982년 이후 상승의 정점이었던 1997년 미국의 이윤율 수준은 여전히 전후
장기호황 시기였던 1960년대 중반의 이윤율의 70%에 지나지 않았다. 즉 미국의
이윤율은 1970년대 저하 이후 1980년대 들어 1997년에 이르기까지 약 15년 동안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황금시대’의 이윤율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는 미국 경제 및 세계경제가 1970년대 이후 시작된 구조적 위기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위기에 맞서 미국의
금융자본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새로운 장기호황의 재개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사회적 축적구조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1997-2000년 미국의 신경제 호황이 거품이 주도한 경제성장이었기 때문에 거품의
붕괴는 곧바로 성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미국 경제는 2001년부터 공식적으로는
‘두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정의되는 불황(recession) 국면으로
돌입했다. 거품 붕괴의 결과 ‘역의 자산효과’(reverse wealth effect)가 초래한
소비지출 감소는 그나마 소비 수요에 의해 유지되던 성장을 중단시켰다. 9.11 대미
테러 이후 소비심리가 급랭하면서 경기후퇴가 가속화되었다. 2001년 미국 경제는
결국 연초 많은 부르주아 경제예측기관의 ‘연착륙’ 희망을 깨고 ‘경착륙’하고
말았다. 
2001년 미국 경제의 ‘경착륙’과 함께 1998년 이후 세계경제의 회복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1998년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제회복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 대한 수출이었다. 미국의
거품 호황에 기초한 미국의 소비 수요 증대 및 이에 수반한 미국의 수입 수요
증가가 1998년 세계경제위기의 일시적 수습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거품 붕괴는 미국의 소비 수요 감소 및 수입 수요의 감소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대미 수출 감소를 초래하여 이들 나라의 경제침체를
결과시켰다.

2001년 들어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감지되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방기금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고, 9.11 대미 테러 이후 소비심리가 급랭하면서
주가 폭락과 경기 침체가 격화되자 작년 한 해 동안 11차례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오늘 미국 연방기금 금리는 1.75%로 40년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9.11 대미 테러 이후 급증한 군비지출은 경제의 총수요 수준을
증대시켰다. 또 미국의 자본은 9.11 대미 테러 이후 조성된 ‘공안정국’을
무차별적 해고 감행 등 노동자 공격에 활용했다. 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예상외로 단기에 승리한 후 9.11 대미 테러 이후 위축된 소비지출도 다시 증대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또 2000년 이후 계속된 IT산업의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인식도 제기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최근 미국 주식시장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미국 주식시장의 최근의 반등을 보고 새로운 호황이
재개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 주식시장의 반등은 실물경제의 이윤율 상승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2001년 중 11차례의 연방기금 금리 인하에 따른 통화량의 급증 (통화량의
한 지표인 M2는 2001년 중 10.5%나 증가하여 지난 30년 이래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금융 거품일 뿐이다. 2001년 부시
정부의 팽창적 통화정책 및 군사적 케인즈주의는 실물경제의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1997년 이후 팽창했던 금융 거품이 터지지 않고 유지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새로운 호황의 재개는 팽창적 통화정책이나 군사적 케인즈주의가 부추기는 소비
지출과 정부 지출의 증대가 아니라, 누적된 과잉자본의 가치 파괴를 통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저하 및 노동자 착취 강화에 기초한 이윤율의 상승이 가능하게 하는
투자의 증대를 필요로 하는데, 오늘 미국 경제에서 이와 같은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경제의 거품이 충분히 꺼졌다는 일부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1965-73년 이후 시작된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추세 및 1997년 이후
시작된 이윤율의 순환적 저하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 최근호(2002.1.12.)에 따르면 2001년 미국의
이윤율은 193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저하했음에도 불구하고, S & P 500의
주가수익비율(p/e ratio)은 무려 40으로 그 장기평균치 16의 두 배도 넘었다.
주가수익비율이 이렇게 높은 까닭은 이윤율은 저하하고 있는데 금리 인하와 같은
팽창적 통화정책 때문에 주가가 충분히 저하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다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국 경제에는 아직도 꺼져야 할 거품이 엄청나게
남아있다. 현재 누적되어 있는 미국의 가계 부채 및 기업 부채와 아직도 충분히 그
가치가 파괴되지 않은 IT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은 불황 탈출과 호황의 재개에
필수적인 기업 투자와 소비 지출의 증대를 곤란하게 하고 있으며, 오히려 2001년과
비슷한, 혹은 더 심한 경제침체를 야기할 소지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부르주아 논자들이 희망하듯이 유로화 출범이 EU 경제를 부흥시키거나 또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미국 경제의 침체를 상쇄하여 세계경제위기의 진행을
상쇄시키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유럽 경제의 부흥 또는 중국의
고도성장의 지속은 이들 나라 제조업의 수출 증대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데, 미국
시장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유럽 및 중국 제조업의 수출이 증대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엔론(Enron) 사의 파산, 미국 달러화 가치의 폭락과 자본
유출,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일본 경제의 부도, 중국의 성장 중단과 같은
변수들이 터져 나오면서 미국 경제의 불황이 격화되어 세계대공황으로 확산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1965-73년 이후 이윤율의 장기적 하강과 함께
시작되어 새천년 들어 올해까지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위기는 198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가 주도해 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한 공황 타개 전략의 전세계적
파산을 입증하고 있다.

2) 궁핍의 세계화
오늘 세계경제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묘사한 세계에 갈수록 더 근접하고 있다.
많은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조차 그 이론적 타당성을 부정하는 맑스의 궁핍화 법칙이
오늘 선진국에서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대량실업과 불완전취업의 구조화, 피구휼
빈민의 증대, 고용불안의 심화, 실질임금의 절대적 저하, 노동시간의 절대적 연장,
극도의 부익부 빈익빈 등, 이러한 현상들은 더 이상 제3세계적 현상이 아니라 오늘
선진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상이다.

오늘 선진국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실업문제이다. 현재
OECD 제국에서 실업자가 3,500만 명이 넘는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데리다도
‘맑스의 유령’이 다시 출몰하는 첫번째 징후로 실업문제를 들고 있으며(Derrida,
1994: 81), 이를 두고 리프킨(Rifkin, 1996)은 ‘노동의 종말’ 시대가 도래했다고
경고한다. 1970년대 이후 구조적 위기와 경쟁의 세계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극소전자, 정보통신 기술혁명과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화, 다운사이징은 전후
‘황금시대’에 수립되었던 케인스주의적 완전고용체제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선진국에서 실업률은 1970년대 이후 계속 증가하여 현재 거의 10% 대에 육박하고
있다(Glyn, 1996: 103).

미국에서는 신경제 호황 동안 고용이 증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새로
늘어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저임금 비정규직종이다. 완전실업의 증가와 함께
불완전취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세기말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미국에서 한 주에 두 개 이상의 일을 하는 노동자 비율이 1979년 4.9%에서 1995년
6.4%로 증가했고, 1995년 임시노동자(contingent workers)는 3,500만 명으로
민간노동력의 28%에 달했으며, 이 중 2,300만 명은 파트타임 노동자로 주당 35시간
이하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
(Bluestone & Rose, 1997). 따라서 이들 불완전취업자를 고려하면 선진국 중
실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미국에서도 1995년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5.9%의 두
배 가까운 10.1%로 된다. 이로부터 오늘 선진국의 실업문제는 더 이상 경기순환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플레와 실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미국의 ‘신경제’의 신화에 많은 사람이 미혹되었던
1990년대 말에도 미국 노동자들은 항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노동 지배를
관철시키는 최강의 무기인 실업의 위협 하에 놓여 있었다. ‘신경제’의 신화의
주역인 그린스펀(A. Greenspan) 자신이 다음과 같이 실토한 바 있다. “불황이
바닥에 있던 1991년 대기업 노동자들의 25%가 자신이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실업률이 급감하고 노동시장이 핍박해진 1996년 이 비율은 46%로
올라갔다”(Henwood et.al., 2001: 20).

최근 선진국 실업문제의 대두와 함께 그 원인을 제3세계의 선진국에 대한 값싼
공산품 수출의 증가나 저임금노동력을 추구하는 선진국 자본의 제3세계로의 입지
이전에서 찾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 2장에서 보듯이 세계화 과정에
제3세계가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제3세계로부터의 상품수입이나 제3세계로의 자본수출이 아니라 선진국 자체의
구조적 불황 및 그에 따른 구조조정과 이에 수반되는 자동화와 정보화 같은
기술혁신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다운사이징 등이 현재 선진국 실업 증가의 주된
원인이다.

그동안 ‘저임금-장시간노동’으로 요약되는 초과착취의 현실은 제3세계나 한국
같은 후진 자본주의에만 고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새천년
저임금-장시간노동이 가장 전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곳은 선진국, 그 중에서도
현재 가장 잘 나가고 있다는 미국의 ‘착취공장’(sweat shop)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절대적으로 감소했다. 1979～95년 성인남자 노동자의
주당소득의 중앙치는 13% 감소했으며, 민간부문 비감독노동자의 평균 주당소득도
12% 감소했다(Freeman, 1996: 116). 고든은 1994년 ‘시간당 지출가능
실질소득’(real spendable hourly earnings)이 1972년에 비해 10.4%나 절대적으로
감소했다면서, 이는 ‘임금압박’이라기보다 ‘임금파괴’라고 표현해야
적절하다고 말한다(Gordon, 1996: 20).

실질임금의 절대적 저하에 직면한 미국 노동자는 이를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한
초과수당으로 상쇄하려고 시도했다. 󰡔과도 노동하는
미국인󰡕(Overworked American)에서 쇼어(Schor, 1991)의 계산에 따르면,
1990년 미국 노동자들은 1970년에 비해 연간 무려 163시간(거의 한 달)이나 더
일했다. 이로부터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을 초기 자본주의나 후진 자본주의에만
특수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과도노동 현상은 앞서 살펴본 대량실업 및 불완전취업의 구조화 현상과
외관상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동일한 현실의
모순된 측면일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과도 노동의 원인은 불완전취업이다.
노동자들은 미래의 예상되는 실직에 대비해서 현재 과도 노동을 하고
있다”(Bluestone and Rose, 1997).

새천년 자본주의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 즉 경제적 불평등은 과거 그 어느
시기보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는 완전고용과
최저임금제 및 사회복지지출 증가에 힘입어 소득분배가 한동안 평등화 경향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부터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른바 ‘U-턴’이 시작되었다. 이보다 늦지만 유럽의 나라들도 1980년대
들어서면서 불평등 심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1990년대 들어서면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corporatism) 나라들도 예외가
아니게 된다. 미국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1980～90년대에 매우 심화되었다.
1983～89년 가장 부유한 가구 20%가 그 기간 동안 창조된 부의 거의 전부인
99%(!)를 차지했으며, 남은 1%가 나머지 80% 가구에게 돌아갔다. 1983～89년 가장
부유한 1% 가구는 그 기간 동안 창조된 새로운 부의 62%를 가져갔으며,
1989～92년에는 더 많은 68%를 가져갔다. 부의 불평등의 심화와 함께 소득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1983～89년 상위 20%가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2%에서
56%로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하위 80%의 비중은 48.1%에서 44.5%로
저하했다(Wolff, 1995: 58-62).

요컨대 실업의 증대, 실질임금 저하, 장시간노동 및 불평등의 심화 현상은 맑스가
‘자본주의 축적의 절대적 일반적 법칙’으로 정식화했던 궁핍화법칙이 새천년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세계화란 노동자계급과
빈민에 대해서는 궁핍의 세계화 과정일 뿐이었다. 오늘 세계는 부국과 빈국
양극으로 분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국민국가의 국민도 가진 국민과 못 가진
국민의 이른바 ‘두 국민’으로 분렬되고 있다. 이른바 ‘20 : 80의 사회’ 경향은
세계적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 내부에서도 격화되고 있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없이는 자신의 존립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암울한 석기시대로 회귀했다.

3) 세계적 프롤레타리아트화
한 동안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유행했던 중간계급론, 노동자계급 소멸론은 2차
세계대전 후 ‘황금시대’라는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정세를 일반적인 경향으로
특권화한 것으로서 오늘은 어떤 진지한 사회과학자도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는 그들의
『제국』에서 오늘 세계가 자본주의 단계를 넘어서 탈자본주의, 탈근대로 가고
있으며, 서비스화, 정보화에 따라 이른바 ‘비물질적 노동’(immaterial labor)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이에 따라 맑스의 가변자본 개념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비물질적 노동의 비중 증대는 ‘감정 노동’(affective labor)
혹은 라이시(Reich, 1994)가 말하는 ‘상징분석가’(symbolic analyst)의 비중
증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보화의 진행 자체가 소외된 노동과 자본주의의 극복 및
공산주의의 도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늘 생산성, 부 및 사회적
잉여의 창조는 언어적, 의사소통적 및 감정적 네트워크를 통한 협업적 상호작용의
형태를 취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비물질적 노동은
자발적이고 초보적인 공산주의의 잠재력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Hardt and
Negri, 2000: 294). 

그러나 이와 같은 현대 세계 인식은 근거 없는 주관적 환상일 뿐이다. 이른바
비물질적 노동의 비중 증대는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의 일부 노동력에 한정된
현상이다. 오늘 자본주의 세계에서 물질적 노동은 여전히 결정적 의의를 갖는다.
사실 IT 산업이 가장 발달한 오늘 미국에서도 트럭 운전기사 수가 컴퓨터 기술자
수보다 훨씬 더 많다. 또 ‘상징분석가’ 혹은 ‘감정노동’ 등 극소수의 소외되지
않은 노동은 세계의 압도적 다수의 소외된 노동, 혐오스런 노동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변혁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또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화이트칼라의 대두가 노동자계급의 종언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즉 선진자본주의 세계에서 전통적인 공업노동력 규모의 감소는 수많은
서비스 및 전문직의 프롤레타리아트화와 불안정 임시 고용의 확산을 수반하고
있다. 그 동안 제조업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은 노동력을 흡수해 왔다. ‘노동의
종말’이 왔다는 미국에서도 일자리 수는 증가했다. 1973-96년 전체 노동력을
경제활동인구로 나눈 참여율은 68.4%에서 77.9%로 거의 10%나 증가했다. ‘노동의
종말’, 혹은 소외된 노동의 폐지는 오늘 세계의 현실적 경향이 아니라 쟁취되어야
할 사회주의적 과제이다.

무엇보다 소련·동유럽 블록 등 사적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본격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제2세계와 제3세계에서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로 동일시되어 온 블루
칼라 노동자는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 13억 인구가 본격적으로 세계
노동자계급 대열에 편입되고 있다. 제2세계와 제3세계에서 오늘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 발전은 아무리 불균등하고 모순에 가득 찬 것이었다 해도
착취당하는 대중의 성격을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화하는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 노동자계급은 세계적 규모에서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이 위기를 노동착취의 강화를 통해 돌파하려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강행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도 고양되고 있다. 예컨대 1996년
『뉴욕타임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55%가 자신을 노동자계급이라고
정의했으며 자신을 중간계급이라고 간주한 사람은 36%에 불과했다. 또 갤럽에
따르면 영국에서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1960년대 초
60%에서 1990년대 중반에는 81%로 증가했다.

21세기 자본주의에서 맑스가 150년 전 서술했던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맑스의 지적‧정치적 평판이
땅에 떨어진 이 시점에서 세계가 1914년 이래 가장 맑스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Henwood, 1996: 3). 장기간의 번영과 상대적으로 평등한 분배가
공존했던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그래서 맑스를 논박하는 증거로 되었던 시대)는
자본주의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예외적인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Ⅲ. 제국주의의 개념과 역사

1.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제국주의
레닌(V. Lenin)은 19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확립된 자본주의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부터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① 생산과 자본의 집적의 고도의 발전에 기초한 독점의 형성.
②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융합으로서의 금융자본의 출현과 금융과두제의 성립. ③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의 역할 증대. ④ 국제독점체에 의한 세계의 경제적
분할. ⑤ 열강에 의한 세계의 영토적 분할. 레닌은 위 다섯 가지 특징을 갖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를 제국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레닌은 제국주의의 역사적
지위를, ① 독점자본주의 ② 기생적이고 부패한 자본주의 ③ 사멸하는 자본주의로
요약했다(Lenin, 1989).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진보진영의 제국주의 문제 인식의 ABC로 간주되고 있으나,
실은 상이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모순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대체로 독점자본주의 단계론과 동일시되어
왔다. 자본주의 발전이 제국주의 단계에 도달하면 경쟁이 제한되고 독점이 경쟁을
대체한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적 해석은 맑스와
레닌의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개념과 상치될 뿐만 아니라 현대자본주의의 현실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맑스에서 독점과 제국주의는 경쟁의 제한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격화된 경쟁, 즉 경쟁의 새로운 형태라고 파악된다. 또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적 해석은 힐퍼딩(R.Hilferding)과 카우츠키(K.Kautsky) 등 제2인터내셔날의
‘초제국주의론’(ultra-imperialism)으로 쉽게 연결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독점이 강화되고 경쟁이 제한되어 생산의 무정부적 성격이 완화되며,
제국주의간 경쟁(inter-imperialist rivalry)과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하는
‘조직된 자본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 가능성이
나타난다는 초제국주의론은 맑스와 레닌의 사상과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또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적 해석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독점의
경제학으로 왜소화하고, 레닌이 요약한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특징 중 ① 독점과
② 금융자본 및 ③ 자본수출 등 세 가지 경제적 특징을 특권화하는 반면,
세계시장에서의 ‘국가 즉 자본’간의 경쟁적 투쟁에 관한 특징, 특히 다섯 번째
열강의 군사적 대결에 관한 특징은 19세기말 20세기초 자본주의의 특수한 정세를
반영한 것이란 이유로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 하지만 레닌이 말한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특징이 독점에서 시작하여 열강의 식민지 재분할투쟁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레닌이 말한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특징을 하나의
변증법적 총체로 이해해야 한다면, 다섯 가지 특징의 결론인 정치군사적 특징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레닌과 부하린(N. Bukharin)의 제국주의론에서
결정적으로 강조되는 점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의 국면으로 들어서게 되면 생산의
고도의 집적의 결과 경쟁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고, 이와
같은 세계시장에서의 국민적 자본간의 경쟁은 결국 국가를 매개로 한 자본들간의
경쟁적 투쟁, ‘국가 즉 자본’간의 군사적 및 경제적인 경쟁적 투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목적은 바로 제2인터내셔날의 기회주의적·민족개량주의적
초제국주의론을 논파함과 동시에, 제국주의 국면에서의 경쟁의 격화와 제국주의간
전쟁의 필연성,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래할 혁명적 정세 및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혁명적 패배주의’(revolutionary defeatism) 전략의 타당성을
논증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오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갖는
한계에도 유의해야 한다. 사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자본주의의 본성인 다수자본의
경제적 경쟁의 측면을 상대화함으로써 맑스의 자본주의론이 제2인터내셔날 및
스탈린주의에 고질적인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으로 왜곡·변질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했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발전단계 즉 이른바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현상으로 이해했지만, 제국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역사와 함께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역사적 경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 레닌의
제국주의론에는 제국주의의 ‘역사적 지위론’에서 보듯이 경쟁에 수반된
자본주의에 고유한 역동성을 과소평가하는 부분이나 파국론적 붕괴론적 자본주의
전망으로 경도된 부분들이 발견된다. 레닌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 발전의
현실적 경향은 경쟁의 억제와 독점에 의한 경쟁의 대체와 생산력의 정체가 아니라,
경쟁의 격화 및 생산력의 지속적 발전이다. 

2. 자본주의의 세계성과 제국주의
주지하듯이, 맑스는 『공산당선언』(1848)에서 자본주의의 세계성을 강조했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자본주의로 출발했고 세계자본주의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자본주의의 보편화·세계화를 결과시킨다고
보았다. 다음 맑스의 150여년 전 서술은 흡사 세계화가 운운되는 오늘 21세기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산물의 판로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전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며, 도처에서 정착하여야 하고,
도처에서 연계를 맺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반동배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부르주아지는 공업의 발 밑에서 그 민족적 기반을 빼내가 버렸다.
...  낡은 지방적 및 민족적 자급자족과 고립 대신에 민족들 상호간의 전면적
교류와 전면적 의존이 등장한다. ... 민족적 일면성과 제한성은 더욱더 불가능하게
되고, 많은 민족적, 지방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형성된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 넣는다. 부르주아지의
상품의 싼 가격은, 부르주아지가 모든 만리장성을 쏘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완고하기 그지없는 증오심을 굴복시키는 중포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들에게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지의 생산양식을 채용하라고 강요한다.
그들은 소위 문명을 도입하라고, 즉 부르주아가 되라고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 ... 그리하여 인구의 현저한 부분을 농촌 생활의
우매함으로부터 떼어 내었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에 의존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야만적 및 반(半)야만적 나라들을 문명국들에, 농업민족들을 부르주아
민족들에, 동양을 서양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Marx and Engels, 1990: 403-4)

즉 자본주의는 이미 150여년 전부터 세계화된 자본주의였다. 인류의 1/3이
소련·동유럽 블록에 살고 있었던 1980년대 이전에 비하면, 세계화가 시대의
화두로 되고, 인터넷으로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오늘,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한다”는 맑스의 묘사는 그것이 쓰여졌던 150여년
전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세계자본주의는 국민적 자본주의의 단순한
집합과는 다른, 그 자체 객관적 실체를 갖는 범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트로츠키(L. Trotsky)가 말했듯이, “세계경제는 개별적인 국민경제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국제분업과 세계시장에 의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강력한 독자적인
실체로서, 그것은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일국적 시장들을 전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Trotsky, 1989: 152). 
그러나 자본주의가 원래부터 세계자본주의라고 해서 세계자본주의가 국민국가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세계자본주의에는 자본의 두
가지 상반된 경향, 즉 자본의 세계화 경향과 국가화 경향이 항상 동시에
모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하린처럼 국가화 경향을 특권화하거나,
반대로 오늘 세계화론자들처럼 세계화 경향을 특권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모순적 경향을 통일적으로, 즉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때 이
모순의 주요한 측면은 세계화 경향이며, 부차적 측면은 국가화 경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자본의 세계화가 지배적인 국면에서는 자본의 국가화 경향이 나타날
수 없다던가 또는 자본의 국가화 경향으로부터 야기되는 국가자본주의간의 군사적
경쟁이 지배적인 국면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의 세계화 경향과
국가화 경향간의 관계는 맑스가 정식화한 이윤율의 저하경향과 상쇄경향간의
관계와 같다. 즉 자본의 세계화 경향은 끊임없이 자본의 국가화 경향에 의해
상쇄된다. 20세기초부터 1960년대까지는 오히려 자본의 국가화 경향이 우세했다.
이것이 1928년 이후 1960년대까지 소련·동유럽 블록의 폐쇄적 국가자본주의적
축적방식이 그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객관적 조건의 하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자본의 세계화 경향이 자본의 국가화 경향을 현실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세계성의 발현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자본의 세계화
경향과 국가화 경향의 모순적 통일로서 전개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국주의는
“군사력이든 아니면 더 세련된 수단에 의해서든 국민과 토지를 정치경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것”, 혹은 “제 나라 자본가계급을 온갖 수단으로 지지하는
중심국들이 세계경제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주변국에 대해 지배와
권력을 행사하는 세계체제”, 그리고 “패권 국가들과 약소국들의 관계에서 군사적
정복과 경제 제재의 위협, 그리고 다른 나라 정부와 영토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힘의 행사”로 정의될 수 있다(Tabb, 2001: 123).

물론 오늘 제국주의의 모습이 19세기말 20세기초의 ‘고전적 제국주의’(classical
imperialism)와 상당히 다른 것은 사실이다. 다른 무엇보다 21세기 제국주의는
지구 전체가 사실상 자본주의로 전일화된 조건에서의 제국주의라는 점에서 고전적
제국주의와 구분된다. “오늘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세계간의
관계보다는 세계자본주의 체제내의 관계와 더 깊은 관련을 가진다. 현대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보편화’라 부를 수 있는 맥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 오늘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세력들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승리하도록 보장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시장 세력들을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의 이해에
유리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더 깊은 관련을 가진다. 이는 단지 특정한 영토를
지배하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경제와 세계시장 전체를 언제 어디서나 지배하는
문제인 것이다”(Wood, 2000: 88-89). 따라서 제국주의를 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리적 접합 및 정치군사적 지배관계로
정의한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이를 교조화한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로는 21세기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자본주의의 보편화로서, 즉 세계자본주의로서 21세기 제국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문제설정으로 복귀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 국가 간 수탈 및 지배를 설명하기 위해 독점자본주의 단계론, 즉 독점적
초과이윤 이론이나 식민지 초과이윤 이론 등을 끌어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족개량주의로 타락하던 제2인터내셔날에서 고전 맑스주의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투쟁했던 로자 룩셈부르크(R. Luxemburg)는 맑스의 『자본론』 제2권의
확대재생산표식에 의거하여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잉여가치의 실현 장소로서 비자본주의 영역을 자본주의로 편입시키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설명 방식은 물론 문제점이 적지 않지만,
중요한 점은 맑스의 『자본론』의 추상 수준에서 제국주의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맑스의 노동가치론을 세계시장에 적용하는 국제가치론에 기초한다면 국가간 수탈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불균등발전은 이론적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성진(1984)을 참조할 수 있다.
 예컨대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와 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간의 가치이전을
분석하는 맑스의 국제가치론은 오늘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중요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맑스는 생산력이 보다 발전한 나라(부국)의 1 시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생산력이 그보다 덜 발전한 나라(빈국)의 보다 많은 시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과 교환되는 국제적 부등노동량의 교환과정에서
빈국으로부터 부국으로의 가치이전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즉 “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한 나라에 의한 다른 나라로부터의 가치의 체계적
전유이다”(Carchedi, 2001: 216)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1995년 세계시장에서
미국의 1 노동시간은 인도의 80 노동시간과 교환되었는데, 이 비율은 1980년의 두
배이었다(Freeman, 2001: 207). 이는 1980년 이후 국제적 부등노동량 교환
메커니즘에 의거한 빈국에서 부국으로의 가치이전이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3. 제국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

1) 세계적 구모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자유무역 제국주의’
사실 자본주의 발생 자체가 일국적 과정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축적
과정이었다. 즉 자본의 본원적 축적 과정 자체가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 발생을 일국적 과정으로 설명한 돕(M.Dobb)과 오쓰까(大塚久雄)
류의 관점은 정정되어야 한다. 예컨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이은
신대륙의 약탈과 식민화 및 노예무역이 없었더라면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성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의 입장에서 19세기 중반의
이른바 ‘경쟁적 산업자본주의’를 미화하는 경향도 정정되어야 한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 자체가 일국적 과정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과정이었다. 즉 산업혁명을 통한 영국의 공업화라는 동전의 뒷면은 인도의
탈(奪)공업화(de-industrialization)이었다. 이 시기에 풍미했던 리카아도(D.
Ricardo)의 비교생산비설에 기초한 자유무역 이론은 패권적 영국 산업자본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오늘 이른바 ‘자유무역 제국주의론’(free-trade
imperialism)이 잘 입증하고 있듯이 자유무역 자체가 제국주의였다.
그리고 자유방임주의, 야경국가론 따위의 주장은 허구적 신화일 뿐이다. 국가는
20세기 중반 이후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중반 이후에도 자본주의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국자본주의의 확립의 획기라고 말해지는 공장법과 은행법의 제정
및 곡물법의 폐지는 결국 국가의 입법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2) 고전적 제국주의: ‘재분배적 제국주의’
19세기말 20세기초로 접어 들면서 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이 가속되었다. 이
시기가 ‘고전적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바로 이 고전적 제국주의 시기를 묘사한 것이다. 고전적 제국주의 시기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레닌이 강조했듯이 제국주의간 경쟁이다. 이 시기에 제국주의간
경쟁은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도 격화되었다.
제국주의간 경쟁은 주로 식민지 쟁탈과 재분할을 동기로 했다. 제국주의간 경제적
경쟁은 정치군사적 경쟁으로 격화되어 1차 세계대전을 야기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세계는 1920년대의 일시적인 상대적 안정기를 경과한
후 1930년대 세계대공황의 수렁에 빠졌다. 각국 정부는 세계대공황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국가자본주의 (뉴딜형 및 파시즘형)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격화된 국가자본주의간의 경제적 및 정치군사적 경쟁이 다시 2차 세계대전을
야기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간
전쟁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3) 냉전 시대의 제국주의: ‘세계 패권적 제국주의’ 메스자로스는 제국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① 식민지 제국 건설 제국주의, ② 재분배적
제국주의(redistributive imperialism), ③ 세계 패권적 제국주의(global
hegemonic imperialism)로 시기구분하고 있다(Meszaros, 2001: 50-51).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팽창한 군비지출 및 노동자계급의 패퇴에 힘입어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에서 벗어나 장기호황 시대를 열게 된다. 이른바
‘황금시대’라고도 불리는 전후의 장기호황은 1945년 이후 대략 1960년대말
1970년대초까지 지속되었다. 전후 시기에는 식민지 체제가 전면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체제의 해체가 제국주의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제국주의는
단지 영토의 점령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정치적으로 독립한 제3세계 나라들은 서방과 동방에서 각각 미제국주의와
소련제국주의 지배체제에 다시 정치군사적 및 경제적으로 종속적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식민지 체제의 해체는 단지 제국주의의 형태 변화만을 의미했다. 

전후에는 전전의 다극적 제국주의간 경쟁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미제국주의
지배체제 내부에서는 봉쇄되고, 미소 양대 제국주의간의 양극화된 경쟁, 즉
냉전이라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제국주의간 경쟁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방
제국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제국주의간의 정치군사적 경쟁, 냉전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물론 열전도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하지만 열전은 양대
제국주의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벌어졌다. 냉전 시기인 1945-89년
전세계에서 138건의 전쟁이 벌어져 2,300만명이 사망했다. 한국전쟁에서 300만명이
죽었고 베트남전쟁에서 200만명이 죽었다(Baxter, 1999: 60).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제국주의간 경쟁은 미국이라는 최강 제국주의 지배 구도
하에서 서방자본주의 내부에서 IMF-GATT 체제 즉 브레튼우즈 체제의 틀 내에서
지속되었다. 전후 서방자본주의 세계는 미제국주의의 패권이 관철되었던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체제였다. 미국은 마샬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유럽 경제를 복구하여 소련제국주의의 서유럽으로의 팽창을 저지했다. 또
미국은 전후 신생독립국들을 개발원조 등의 수단을 통해 자국의 지배체제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양극적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다극적인 세계였다. 즉 독일과 일본이 전후 복구와 급속한 공업화에 성공하면서
세계적 규모에서 불균등발전이 진행되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압도적 지위는
위협받기 시작했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중지 선언과 함께 IMF-GATT
체제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전후 장기호황 시기는 제3세계에서 부분적
공업화가 진행된 시기이기도 했다. 전후 시기에서 최대 이슈의 하나는 남북문제와
제3세계의 공업화였다. 이 시기에 소련제국주의가 지배했던 동방의 제2세계에서도
국가자본주의적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소련·동유럽 블록은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에 따라 서방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축적 과정의 모순인 과잉축적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제국주의적
대외팽창 경향을 보였다. 과거 소련과 오늘 중국은 제국주의 진영에 대항하고 있는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가 아니라, 서방 자본주의와 동일하게 제국주의 진영을
구성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이다 (‘중소분쟁’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팽창하는
제국주의적 국가자본주의의 충돌로 이해되어야 한다). 가령 1928년 스탈린 집권
이후 시작된 소련내 비러시아계 민족의 자결권의 유린 및 소수민족의 강제 이주와
분할 지배, 1939년 스탈린-히틀러 비밀조약에 의거한 소련의 동부 폴란드 지역의
강점, 베싸라비아, 몰다비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의 합병, 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의 이른바 ‘공산화’와 그 과정에서의 공장설비의 강탈, 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봉기의 유혈진압,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의 무력에 의한 종식,
1979년 이후 아프가니스탄 점령, 1980년 이후 폴란드 연대노조의 탄압 방조 등의
사태들은 모두 소련제국주의의 팽창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소련제국주의는 COMECON 제국을 비롯한 기타 동유럽 블록 나라들에 대해
세계시장가격 이상으로 수출하면서도, 수입할 때는 세계시장가격 이하로 수입했다.
예컨대 1973년경 쿠바 무역량의 67.5%가 소련과의 무역이었는데, 쿠바의 주요
수출품인 사탕수수는 세계시장가격보다 50% 비싼 소련의 공산품과 교환되었다.
그리하여 쿠바 경제의 고질적인 모노컬쳐적 성격은 이른바 ‘호혜적인’
‘사회주의적 국제분업’에 편입됨으로써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들은 소련제국주의에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바르샤바 조약기구 등을 통해
군사적으로도 종속되어 있었다. 소련은 제국주의적 수탈 덕택에 높은 수준의
자본축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미국과 소련 양대 제국주의간의 경쟁은 주지하듯이 1989-91년 동유럽 혁명을
계기로 미제국주의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그 후 미제국주의의 세계적 패권은 더
강화되었다. 


Ⅳ. 21세기 미제국주의의 세계지배

1. 198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
1973년 이후 쇠락하는 것으로 보였던 미제국주의의 세계지배 체제는 1970년대
미국의 축적체제가 금융주도 축적체제로 전화하면서 서서히 재편·회복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의 신보수주의 반혁명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가 시작되면서 미국은 다시 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1989-91년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는 미국의 세계적 지배체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미국은 걸프전쟁과 보스니아전쟁, 코소보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보듯이
군사적 수단에 의한 세계지배를 강화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198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는 국제금융자본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반혁명 및 IMF,
World Bank, WTO, NATO, UN 등 국제기구를 통한 지배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오늘 세계는 미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이며 세계화란 미제국주의의 세계적
지배의 확장과정일 뿐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에서 오늘 미제국주의 지배의
현실을 부정하고 세계에는 어떤 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오늘
“제국은 개방되고 확장되는 경계 속으로 전 지구 영역을 점진적으로 포함시켜
가는 탈중심화되고 탈영토화된 규칙의 기구이다. ... 이러한 스무드한 제국의
공간에 권력이 들어 설 자리는 없다. 권력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동시에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은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이 뜻하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non-place)이다. ... 오늘 미국은, 그리고 어느 나라도,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중심을 형성하지 못한다. 제국주의는 끝났다”(Hardt and Negri, 2000:
ⅹⅱ, 190, ⅹⅳ).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네그리와 하트는 오늘 세계를 고대 로마제국에
비유하면서 오늘 ‘제국’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부정함으로써 결국 오늘 세계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을 포기했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오늘의 세계가 맑스의
노동가치론의 경계를 넘어 선 세계, 즉 자본주의를 넘어 선 세계는 아니다. 오늘
세계화가 미국 자본이 중심이 된 미국 자본의 지배력의 세계적 확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체험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가 거의 실시간으로 세계 많은 나라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으며,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 각지의 주요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되고, 맥도날드와 던킨
도넛이 세계 오지로까지 들어가는 사태에서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오늘 미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직접적으로 군사적으로 지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전적 제국주의 시기와 같은 군국주의적 성격이 약화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군사적 정복이라는 과거의 원칙이 무역 및 금융시장을 통한 지배라는 덜 폭력적인
수단으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세계가 더 평화롭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사력은 제국주의 프로젝트에서 여전히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러 면에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Wood, 2000: 89-90). 1980년대 이후
세계화는 금융과 정보 및 문화를 통해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미국의 천문학적 군사력이 세계적으로 더 확장되는 과정이었다.
오늘 미국은 세계최대의 군사강국이다. 1996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러시아,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및 중국 등 6개 군사강국의 국방예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세계의 경찰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세계 도처의
이른바 위험지역에서 선별적 개입, 폭격 등을 통해 자신의 규칙을 강제해 왔다.
세계화 과정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동의와 협조를 통해서이든, 노골적
폭력과 경제적 위협의 동원에 의해서이든, 각 국민국가들이 미국 권력에 예속되는
과정이다(Jameson, 2000: 66-67, 50-51). 탈냉전 시대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예컨대 1999년 8월 1일 이전 1년 동안 지구상에는 10건의 국제전과 25건의 내전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11만명이 사망했다(Baxter, 1999: 69) 미국은 탈냉전 시기의
이러한 열전들을 의도적으로 도발했는데 이는 탈냉전 후 의문시되었던 미국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군사적 효용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란 미제국주의의 세계적 패권이 강화되는 과정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아리기(G. Arrighi)나 월러스틴(I. Wallerstein) 등 일부
세계체제론자들은 베트남전쟁 패전 후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상대적으로 열등한 성과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미국의 “구 조적 권력”은 미국의 수출이나 GNP만으로는
측정될 수 없다(Panitch, 2000). 무엇보다 금융과 정보 및 문화, 그리고
군사력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세계적 우위를 고려한다면, 오늘 미제국주의가
과거보다 약화되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미국은 오늘 법률적으로도 미국의 국내법의
적용 범위를 전지구적으로 확장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오늘 “현실은 국가
주권 영역에서 비대칭적인 변화의 유형이다. 즉 국제체제에서 대다수 국가들에서
주권이 현저하게 약화되는 경향과 함께 한 국가에 예외적으로 대권이 집중되고
있다”(Gowan, 2001a: 85). 요컨대 닉슨부터 클린턴, 부시에 이르는 시기에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는 약화된 것이 아니라 재조직되고 강화되었다. 
 
2.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의 배경: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의 성립 
198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는 2차 세계대전 후 팍스아메리카나 시기에
형성되었던 IMF-GATT체제의 이른바 ‘달러-월스트리트 체제’(Dollar-Wall Street
Regime)로의 전환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Gowan(2001b) 참조).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의 성립은 산업자본에 비한 국제금융자본의 상대적
융성의 산물이다.

국제금융자본이란 한마디로 국제적 규모로 운동하는 금융자본인데, 금융자본은
19세기말 20세기초 독일 경제의 사례에 기초하여 힐퍼딩이 정의했던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융합이라는 개념보다는 애초에 맑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했던
화폐자본의 공식으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맑스는 산업자본의 공식,
M-C(MP+LP)…P…C'-M' 및 상업자본의 공식, M-C-M'과 구별되는 화폐자본의 공식을
M-M'로 제시했다. 국제금융자본이란 전세계적 규모에서 화폐자본의 순환, 즉
M-M'의 확대·심화를 통해 투기적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 형태이다. 즉
국제금융자본이란 소로스의 헤지펀드처럼 국제적 규모로 돈놀이하는 자본이다. 

국제금융자본의 이윤의 기초는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투기적 이득이다. 그러나
국제금융자본의 투기적 이윤의 원천은 전세계 노동자대중이 생산한 잉여가치이다.
돈이 돈을 낳는 것 같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주식투자로 환투기로 번 떼돈
이면에는 노동자대중의 피땀이 서려있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운동은 생산적 자본,
산업자본의 운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립적일 수 있다. 금융자본의 번영은 생산적
자본축적의 원활함, 즉 산업자본의 번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산업자본
축적의 위기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 이후 국제금융자본의 지배 역시
1968-73년을 경계로 한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의 종식,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개시와 함께 시작된 현상이다. 이윤율이 저하하는 실물생산부문에서 빠져
나온 자본이 금융 부문으로 유입되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197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 현상이다. 국제금융자본은 1970-80년대 이후 본격화된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성립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의 국제화가 진전되어도 주로
국제무역과 해외직접투자를 중심으로 한 국제화였으며 외환, 주식, 채권시장이
국제화되는 금융세계화는 1970년대 이후 전개된 새로운 현상이다. 국제금융자본은
케인즈주의적 국민국가의 틀을 기초로 했던 ‘황금시대’의 국제경제관계인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화를 이루어내었다.

198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는 이 시기에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반혁명의
산물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란 한마디로 “시장은 항상 좋은 것이고 국가는 항상
나쁜 것”이라는 주장이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는
신자유주의 전략을 집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전략에서 핵심적인 것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정치경제적 권력의 우위의 재확립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책임을 복지국가와 노자간의 사회적 합의에서 물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 노자간의 사회계약 같은 2차 세계대전 후 성립했던 ‘황금시대’
자본주의의 사회제도인 케인즈주의적인 사회적 합의를 장애물로 간주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해체,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자유시장
지상주의를 위기의 대처의 논리로 제시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시작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금융자본의 전략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세계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 반혁명을 주도함으로써 1970년대 이후
위협받던 미제국주의의 세계적 패권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국제금융자본은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있는데 이는 ‘월스트리트-미국 재무성-IMF 복합체’(Wall
Street-Treasury-IMF complex)라고도 불린다. ‘월스트리트’와 미국 재무성
그리고 IMF의 ‘인적 유대’는 현재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그린스펀과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루빈(R. Rubin)이 모두 위 직책을 맡기 전
월스트리트의 ‘큰손’들이었으며 (그린스펀은 J.P.모건의 사장, 루빈은 골드만
삭스 공동회장), 루빈은 사임 후 다시 월스트리트로 즉, 시티그룹 공동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만 보아도 분명하다(Tabb, 2001: 137-8). 최근 루빈은
엔론사(시티그룹은 엔론사의 최대 채권은행이다)가 부패와 사기 끝에 파산하기
한달 전 엔론사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막아 달라고 피셔 재무부차관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한겨레신문』, 2002.1.23.).

 21세기 미제국주의는 바로 이와 같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자본 체제, 즉
‘달러-월스트리트 체제’가 기존의 전통적인 미국의 지배체제인 ‘군산복합체’에
중첩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정부는 소련·동유럽 블록의 미제국주의
지배체제로의 종속적 편입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의 규율과
아메리카화를 위해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와 1995년 ‘역
플라자 합의’(reverse Plaza Accord)를 통해 달러-엔화 환율 변동을 조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급속하게 성장하던 일본 경제에 장기불황에 빠지고,
승승장구하던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이 1997-98년 금융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3.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와 국제기구
199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세계지배는 국제기구를 이용한 지배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미제국주의의 경제적 세계지배를 위해 봉사하는 주요한 국제기구는
IMF와 WTO, World Bank이며 미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적 세계지배를 위해 봉사하는
주요한 국제기구는 NATO와 UN이다. IMF와 WTO 및 World Bank는 미제국주의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도구들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NATO와 UN은 199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의 도구들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국제기구의 외관상의 초국가적인 지구적 권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제국주의적 권력정치적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 국제기구들을 어떤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지구적 지배구조(global governance)의 구성요소들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들은 철저히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미제국주의의 도구들이다.
예컨대 IMF와 World Bank는 미제국주의가 198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 강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집행하는 기구들이다. WTO도 지적재산권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국제기구들은 오늘 반세계화 운동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1) IMF
IMF는 World Bank와 함께 1944년 창설되었는데 이는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경제를 관장하는 기구이다. IMF 가맹국들은 그 나라 국민들의 필요가 아니라
그 나라 경제력에 비례하여 의결권을 갖는다. 미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IMF 의결권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G7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은 IMF 의결권의 45%를 차지한다. IMF가 철저하게
미국의 도구라는 것은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이 지역에 구제금융을
제공한 IMF의 총재 깡드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 “우리가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세계 외교의 기본적 목적들과 부합된다.”
(『파이낸셜 타임즈』, 1998.2.9.) 즉 미국은 IMF를 미국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IMF는 제3세계와 제2세계에 대한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의 영향을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IMF의 역할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나라 국내적인 조정을 잘 이뤄내
월스트리트에서 차입한 채무의 원리금 상환을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있다”(Gowan, 2001b: 86) 즉 “IMF는 채권자를 돕기 위해 채무국 국민들에게
심각한 긴축정책을 강제한다”(Tabb, 2001: 132) 또 IMF가 관장한 1990년대
소련·동유럽 블록에서의 ‘충격요법’(shock therapy)은 과거 COMECON 차원의
권역적 산업연관을 해체하고 파편화된 블록의 각 나라들을 부채살 모양으로 서방
세계에 종속적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주도했다.
 
2) World Bank
World Bank는 제3세계에서 도로, 댐,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World Bank는 IMF와 함께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 대부를 해 왔다. IMF와 World Bank는 현재
그들이 대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의 이자 수입을 올리고 있다. 현재 대부
금액의 대부분도 과거 대부한 것의 원리금 상환을 위한 것들이다. IMF와 World
Bank가 제시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대부를 받을 수 없다. 그
결과 IMF와 World Bank의 대부를 받는 나라들은 시장개방, 민영화, 공공지출 삭감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서 IMF와 World Bank가 강요한 구조조정계획 때문에 기초적 의료지출이
삭감되어 유아사망률이 높아졌으며, AIDS가 확산되었다. 구조조정계획을 수행한
76개 나라 중 단 4개국에서만 경제사정이 개선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80년대
이후 수출로 번 돈의 1/3 이상이 원리금상환으로 날아갔다. 요컨대 “IMF와 World
Bank 체제 전체는 대서양 세계의 권력놀음에 따른 비용을 ‘남측’에 사는 대다수
인류에게 전가하도록 계획되어 있다”(Gowan, 2001b: 283)

3) WTO
9.11 대미 테러 이후 조성된 세계적 공안정국을 틈타 2001년 11월 14일 카타르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가 열려 WTO 뉴라운드가 출범했다. 1995년 1월 1일 출범한
WTO는 공산품 뿐만 아니라 농산물, 지적재산권, 서비스 등 광범위한 영역을 무역에
연계지어 자유화하는 전지구적 다자간 무역체제이다. 그러나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제3차 WTO 각료회의에서의 전세계 민중들의 저항과 제3세계 국가들의 불만이
보여주듯이 WTO는 제3세계의 저개발과 빈곤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무역자유화를
구실로 제3세계 경제를 미국 등 제국주의 자본에 완전 개방함으로써 제국주의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WTO는 제국주의 자본의 요구를
대표하는 일종의 포럼이다. WTO를 이용하여 해외시장을 개방하고 국내산업을
지키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예컨대 카타르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채택된 농업협정의 경우, 관세의 대폭적인 인하 및 농산품에 대한
국내 보조금 철폐라는 미국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되었다. 요컨대 WTO는 가능한
많은 영역들을 무역에 연계지어 자유화 개방을 명분으로 제국주의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고 정부의 자율적인 정책을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부르주아 경제학자인
바그와티(J. Bhagwati)조차 WTO의 “공격적인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비난할 정도이다.

4) NATO
탈냉전 후 NATO는 소련제국주의의 팽창에 대한 방어적 군사동맹기구로부터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력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그 기능이
전화되었다. 탈냉전 후 NATO의 확장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의 가입)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쳐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다. NATO의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 뒤에는 미제국주의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가로 놓여
있다. 1999년 미국의 NATO를 통한 유고슬라비아 공격은 유로화의 출범과 함께
강화되고 있는 EU 제국주의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계산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즉 유럽 동맹국들에게 유럽 대륙 내에서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을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리고 NATO의 확장은 또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서방 선진국의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5) UN
UN은 흔히 주장되듯이 평화를 바라는 세계 인류의 희망으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종전 국면에서 주요 제국주의국들의 협상의 산물이었다. UN을
창설하는 협상을 지배했던 나라는 물론 미국이었다. 미국이 UN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음은 전 UN 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Boutros-Ghali)가 미국 정부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지 않자, 즉 “세계 제1의 강대국과 협조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곧 코피 아난(Kofi Annan)으로 갈아 치운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쟁에서 UN을 이용하여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다. 소말리아와 보스니아에서 UN은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대량학살과
인종분규를 조장 방관했다. 르완다에서도 UN은 대량학살을 방관하고 그
배후조종자를 보호했다. 모든 경우에서 UN의 개입은 인도주의라는 명분 하에
수행되었지만, 실은 모든 것이 인권이나 국제법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계획에
의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탈냉전 시대에 미국이 이처럼 자국의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UN을
이용하기가 점점 힘들게 되자, 미국은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격에서 보듯이
NATO를 키우는 식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Ⅵ. 맺음말

미제국주의가 오늘 승승장구한다고 해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체념하는 것은
잘못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패권이 강화된 시기는 안정되고 평화스런 시기가 아니라 체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되었던 시기였다. 1990년대 이후 세계에서 미제국주의의 세계
지배는 점점 더 강압적 지배와 착취적 지배로 전환되었다. 이 점이 1950-60년대
전후 ‘황금시대’의 팍스아메리카나와 구별되는 오늘 미제국주의 지배의
특징이다. 사실 지난 ‘황금시대’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는 단지 강압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발전’을 통해 모든 나라들을 부유하게 해 준다는 세계적
뉴딜의 약속을 믿은 제3세계의 동의가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의 새로운 권력은 국제금융시장의 조작을 통해 제3세계 및 제2세계
나라들의 부를 가차없이 흡입하는 메커니즘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호황은 다른 선진국과 제3세계 나라들에 불황과 실업을
수출하고 세계의 모든 화폐자본을 빨아들이는 것에 기초한, ‘제로썸’(zero-sum)
게임의 산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65-73년에 이르는 장기호황 시기처럼
미국이 주도했던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나라들이 동시에 호황을 구가했던
‘양합’(positive-sum) 게임은 이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먼 옛날의 추억이다.
요컨대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권력이 부풀려지고, 부의 세계적 위계구조가
공고히 된 것은 국가간 경쟁의 ‘제로썸’ 혹은 ‘음합’(negative sum)
게임으로의 전환을 통해서였다”(Arrighi and Silver, 2001).


그러나 금융자본의 투기적 이득의 원천이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대중이 창조한
잉여가치이기 때문에 실물 생산부문의 자본축적과 유리된 금융자본의 축적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이윤율은 저하하는데 주가가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물부문의 수익성과 유리되어 과도하게 상승한 주가는 조만간 폭락하게
되어 있다. 2001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미국 경제의 불황은 금융자본 축적이
주도하는 미제국주의의 경제적 우위가 매우 취약하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입증한다. 1990년대 미제국주의의 패권 강화의 모순적 성격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군사적 수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 EU제국주의와 중국 제국주의의 대두 및
러시아 제국주의의 재부상과 함께 제국주의간 정치군사적 경쟁이 다시
다극화하면서 미제국주의의 패권적 세계 지배가 위협받고 있다. 카우츠키 류의
초제국주의론은 20세기초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초의
세계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제국주의의 패권의 강화에 대한 최대의 장애물은 1999년말
시애틀에서의 반WTO 투쟁과 2001년 9.11 대미 테러에서 보듯이 전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반미 투쟁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의 세계 권력이 회복하게 된
기반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견고하지 않다. 한 줌의 부유한 국가들의
나머지 세계에 대한 착취적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이 세계 권력을 사용하려는
시도는 전지구적 재앙을 부르는 확실한 보증수표이다”(Arrighi,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