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론은 무엇이고, 유물론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초기에, 공업화가 전반적인 행복과 복지를 가져오는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더욱 혹심한 빈곤과 불행을 안겨준다는 점을 날카롭게 인식한 사상가들이
여럿 있었다. 영국의 시인 블레이크와 셀리, 프랑스의 푸리에와 프루동, 독일
철학자 헤겔과 포이에르 바흐, 그리고 마르크스 등이 그들이다. 
헤겔과 포이에르 바흐는 인간이 처한 이 불행한 상태를 “소외”라고 불렀다.
요즘도 흔히 듣게되는 이 말의 의미를 헤겔과 포이에르 바흐는 인간이 자기가
과거에 했던 행동에 지배되고 억압받는 상태라고 말했다. 포이에르 바흐는 그
예로, 인간은 신이란 관념을 만들어 신 앞에 엎드려 절하고 나서는, 자신이 만든
신의 뜻에 따라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비참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오히려 인간은 더욱 비참해지고 ‘소외’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이 ‘소외’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사회의 부를 창조한 사람들, 즉
직접적인 생산자들의 삶에 적용하였다. “노동자는 부를 생산하면 할수록, 그의
생산 능력과 생산범위가 증대하면 증대할수록, 더욱 가난해진다. 물건의 가치가
증가함에 비례해서 인간의 가치는 하락한다. 노동의 산물은, 소외된 그 무엇으로,
즉 생산자로부터 독립된 어떤 힘으로서 노동과 대립하게 된다”고 말했다.

관념론

위의 사상가들이 살았던 시대에, 사회 문제에 대한 가장 통속적인 설명은 종교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의 불행은 신이 자기들에게 명령하는 바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이었다. 종교적인 색채는 많이 없어졌지만, 이와 비슷한
견해가 오늘날에도 광범하게 유포되고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전에 개인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국민이 자기의 ‘이기심’이나 물질 만능주의를 버리면
사회가 건강하게 바뀔텐데……” 이것과 유사한 것으로서 ‘모든’ 개인이 아니라
소수 지도층이 변하면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말들도 자주 등장한다. “지도층이
솔선 수범헤야 한다”는 따위의 얘기들이 신문과 TV에서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사회가 변하기 전에 먼저 국민 전체의 혹은 소수 지도층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 모든 견해들을 우리는 관념론이라고 부르고, 이를 비판한다. 사람들이
관념(일단 머리 속의 생각들이라고 이해해보자)을 갖는 것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이런 견해들이 관념을 인간의 생활조건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관념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기심이나 탐욕을 예로 들어보자. 오늘날 남한 사회는 이기심을 조장하고 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조차 이기심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 것을 억누르기 힘들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아버지
노동자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부모에게 송금하는 효자 노동자는 마누라와 자식
부양과 부모 공양을 위한 유일한 길이 끊임없이 다른 노동자들과 경쟁해서 더 나은
직장을 얻고 좋은 조건의 잔업을 하고, 인사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런 사회의 노동자들이, 개개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기심’이나
‘탐욕’을 버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권력과 부의 정상에 있는 소위 ‘지도층’의 생각을 바꿈으로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훨씬 더 웃기는 얘기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지만 만약 어떤
대기업 회장이 노동자들한테 설득당해 노동해방이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보자. 그러면 이 대기업 회장은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이 ‘양심적’ 자본가는 과연 얼마 동안이나 노동해방이라는 관념을 가질 수
있을까? 한달? 
관념이 인간의 생활조건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다른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제도언론과 상업주의 언론이 잘못되고 왜곡되게 유포하는 관념을
옹호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도대체 노동자는 어떻게 제도언론이
유포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노동자들의
생활조건과 그 속에서의 경험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즉 자본가들의 이익에
맞는 관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일하다 해고당하곤 하는 노동자들한테
“열심히 일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좇같은 얘기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은, 그리고 이러한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래서 노동자계급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생활조건과 전혀 맞지 않는 거짓 관념을 떨쳐버리고 ‘의식화’되기
시작한다. 80년대 말보다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요즈음 왜 ‘의식화’한
노동자들이 70년대보다 늘어났는가 하는 것을 단순히 “외부 세력의 개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째서 노동자들이 70년대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는 것이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서,
‘위인’들의 영향을 설명하려면 왜 대중이 그들을 따르기로 했는가가 설명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나폴레옹이나 레닌, 그리고 전봉준이
제안한 바에 따르기로 했는가를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나폴레옹이나 레닌,
전봉준이 역사를 바꾸었다고 말해봤자 공허하다. 위인들이 최면술사는 아니지
않은가?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사회생활의 무언가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폴레옹이나
레닌, 전봉준이 제안한 바가 옳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관념이 어디서 나온 것이며, 왜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만 관념이 역사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즉 노동해방이라는 관념이 어디서 나온 것이며, 노동자들이 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를 이해해야 노동해방이라는 이상이 역사를 바꾸는 데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관념을 형성시킨 사회의
물질적 조건들을 검토할 때만 관념의 역할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유물론과 사이비 유물론

‘관념이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관념 그
자체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인식에 이르는
출발점이다. 역사를 이해하려면, 인간을 물질세계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인간의
행동은 다른 자연물들의 행동처럼 물질적 힘들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이상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유물론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견해에 입각한
역사관과 사회관은 종교적·관념론적 세계관에 비해 한층 더 진일보한 것이다. 즉
사회의 여러 조건들을 변화시키려면, 더 이상 신에게 기도한다거나 “사람들의
정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관념론을
버리고 유물론을 택하는 것은 ‘신비한 것’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과학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행동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이 모두 올바른 것은 아니다. 생물학이나
물리학에도 그릇된 이론이 있듯이, 사회를 인식하기 위한 사회과학에도 잘못된
이론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번 째 예는 매우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는 것인데, 인간의 행동이 물질적 힘들에
따라 결정되긴 하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는 ‘본성적으로’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견해이다. “늑대가 ‘본성적으로’ 다른 동물을 죽이고 양이 ‘본성적으로’
온순하듯이,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격적이고 지배욕이 강하며 경쟁적이고
탐욕스럽다.” “여자들은 ‘본성적으로’ 남자한테 의존하며 살아가게 되어있다”
등등.
이런 주장이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공격적이고
지배욕이 강하며 경쟁적이기 때문에 사회를 개선하려고 노력해봐야 헛일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게 똑같을 테니 변혁운동을 통해 새 사회를 건설해도 그
사회는 항상 실패작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틀린 것은 소위 ‘인간 본성’이란 것은 사회마다 달랐다는
데서 드러난다.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경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전의 많은 사회에선 존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처음으로 인디언들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하려 했던 과학자들은 왜 그들이 서로서로 협력해서 지능검사의
답을 구하면 안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사회에서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을 강조했던 것이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공격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유럽 사람들과 처음 대면했던 에스키모
사람들은 도대체 전쟁이라는 말(그들에게는 ‘말’이 아니라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이 뭘 뜻하는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싹슬이’ 한다는 생각은 그들한테는 정신나간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즉 ‘인간
본성’에 어울리는) 걸로 여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에서는
젖먹이를 산속에다 버려 놓고 추위를 이기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 ‘당연한’(즉
인간 본성에 어울리는) 걸로 여겼다. 
또다른 사이비 유물론은, 동물이 써커스에서는 정글에서와 다른 행동을 하도록
길들여질 수 있듯이, 인간의 행동도 이와 유사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제대로 된 사람들이 사회를 통제하기만 한다면, ‘인간본성’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불변의 인간본성’론보다 한걸음 더 발전된 견해이지만,
사회전반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는 실패작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조건에 제약받는다. 그렇다면 이 사회조건을 딛고 넘어서서 제어장치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른 여러 사람들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조건의 압력을 마술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신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우리 모두가 써커스에 나오는 동물이라면,
누가 사자 조련사란 말인가?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불변의 인간 본성’론자들처럼,
사회란 변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거나, 혹은 변화는 신이나 위인 또는
종교의 힘과 같은 사회밖에 있는 어떤 것이 만들어 낸다고 믿게 된다. 결국 이런
사이비 유물론들은 모두 새로운 관념론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사이비 유물론적 견해는 세계의 모든 불행을 인구증가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중국이 , 인도가 못사는 이유는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이 나라 사람들은 애를 안 가지든가, 죽는 사람보다 더 적은 수가 나오도록
통제해야돼, 애 많이 놓을려고 하는 놈들은 X를 잘라야 해’. ‘우리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는 미쳤어. 보릿고개 타령하면서 웬 애는 그리고 많이 낳았는지 나
원참’
그러나 이 ‘인구 증가’론은, 예를 들어 미국같은 나라가 옥수수를 태워없애
버리는 데 반해, 아프리카와 북한의 대중은 굶어죽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은 미국에서 150년 전에는 1천만 명분의 식량밖에 생산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2억명이 먹고도 남을만큼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은 식구 하나가 늘 때마다 노동할 수 있고 부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 하나가 더 늘어난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런 사이비 유물론들을 우리는 기계적 유물론 혹은 천박한 유물론이라 부른다. 

역사 유물론

오래 전 인간은 맹수를 공격하기 위해 돌과 막대기를 사용했고, 열과 빛을 얻기
위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을 이용하여 횃불을 켰으며 동물 가죽과 식물로 몸을
가렸다. 수만년에 걸쳐서 인간은, 스스로 불을 일으키는 것과 다른 돌맹이를
사용해 석기를 만드는 것과 결국은 자신이 심은 씨앗에서 식량이 자라게하여
토기에 그것을 저장하는 것과 동물을 길들이는 것을 배웠다. 비교적
최근에―100만년의 인류 역사에 비하면 불과 5천년 전에―인간은 광석을 유용한
도구와 효율적인 무기의 재료인 금속으로 변형시키는 비법을 알아냈다. 이 모든
진보로 인간은 더욱 손쉽게 먹고 입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 그
자체의 조직에도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인간의 생활은 사회적이었다. 여러 사람의 공동 노력을 통해서만
맹수를 죽일 수 있고, 식량을 모을 수 있으며,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즉, 인간은
협동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밀접한 행동을 통해서 인간은 또한
소리를 내서 언어를 발달시킴으로써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사회 집단은 단순했다. 건장한 수십명의 인간 집단을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을
만큼 자연적으로 자라는 농산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식량을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에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종류의 생활을 해야 했다. 또
식량을 저장하는 수단이 없었으므로 사유 재산이나 계급 분화가 있을 수 없었고
전쟁 동기를 유발시킬 어떤 노획물같은 것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이와 같은 모습의 사회가 지구상 곳곳에 수백 군데나
남아 있었다. 남북미 대륙의 인디안 부족들이나 아프리카의 적도 부근과 태평양
연안의 민족들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등이 그런 사회이다. 이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영리하지 못하거나 더 ‘원시적인 심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수천종의 식물과 수십가지의 상이한 동물들의 습성을
바로 알아낼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조수 운동과 혹성의
주기 및 계절의 순서와 지속기간에 대해서도, 풍향과 풍속, 연간 습도와 기온
유형과 같은 기후 변동이 생물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잘안다. 다만 그들이 터득하지 못한 것은 씨를 뿌려 자기들의
식량을 키우는 것이었다. 
부(富), 즉 인간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신기술의 발전은 항상 인간들 사이의
새로운 사회적 분업형태, 즉 새로운 사회관계를 생겨나게 했다. 예컨대, 인간이
처음으로 씨를 뿌리고 동물을 길들임으로써 식량을 기르고 토기에 그 식량을
저장하는 일을 알게 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이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회생활의 전면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인간은 이제 동물을 사냥하는 데뿐만
아니라 이제는 땅을 개간하고 추수를 하는 데도 협력해야 했다. 그리고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할 수 있었고, 식량을 저장할 수
있었으며,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과 재화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또 최초의 도시들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저 식량을 마련하는 데에만 종사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이 최초로 생겨날 수 있었다. 항아리를 만드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도구와 무기를 만들기 위한 부싯돌 채광과 금속 채광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전체 공동체 성원을 위해 초보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등이 생겨났던 것이다. 불길한 것은, 저장된 잉여 식량이 전쟁
동기를 유발·제공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주위의 세계를 다루거나 자원을 필요에 맞게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생활을 변형시킨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를
변화시키고, 생산관계의 변화를 통해 사회까지 변화시킨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최근의 예들을 보자. 3백년 전에 서구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땅을
일구고 살면서,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기술을 가지고 식량을 생산했다. 그들의
생각의 범위는 그 지역 촌락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그들의 관념은 그 지역 교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다수는 읽거나 쓸 필요가 없었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백년 전쯤에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공장에는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생활은 철저한 탈바꿈을 했다. 이제
그들은 조그만 촌락이 아니라 대도시에 살게 되었고, 읽고 쓰는 것을 포함해
그들의 선조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기술들을 배울 필요가 있게 되었다. 또, 철도와
증기선의 발명으로 지구의 반을 횡단하여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성직자들이
머리에 주입해온 고리타분한 관념들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생산에서의
물질적 혁명이 생활양식과 생각, 즉 관념에서의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은 농업국에서
고도로 발전된 공업국으로 변모하였다. 몇 천에서 몇 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대공장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 노동자들은 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농업사회의 유산과 고리타분한 유교적 관념으로부터 단절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여성들이 가정 밖의 직장일에 익숙해지면서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이전의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과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변화를 초래한다.
이것이 관념론자들과 기계적 유물론자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사회 변동, 즉 역사의
비밀이다.
관념론자들은 변화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변화는 관념이 바뀌면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기계적 유물론자들은 인간이 물질세계의 규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했지만, 객관적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은 인간이 자기 주위 세계의 제약을 받지만 역으로 그 세계에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작용하여 세계를 더욱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상황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자기들 자신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회변동을 이해하는
열쇠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의식주를 만들어내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기술과학의 발전이 자동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낳는다거나
새로운 발명이 자동적으로 사회변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의식주의 생산을 촉진하는 발상이나 관념들이 기존의 사회형태나 사람들의 태도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듭해서 이러한 관념들을 배척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18세기에 영국이 아일랜드를 통치했을 때,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의
공업발전이 런던 기업가들의 이익과 상충되기 때문에 그것을 저지하려 했다.
브라질에서 70년대에 개발한 알코올 자동차는 연료비도 적게들고 공해가 적은데도,
미국이나 영국의 대규모 석유회사들이 GM이나 포드같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에 가한
압박 때문에 오직 브라질에서만 생산되었다. 지금 만약 누군가가 소를 잡아 인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내놓는다면, 그러한 방안들은 기존의 편견 때문에
묵살당할 것이다.
생산의 발전은 낡은 편견과 낡은 사회조직 방식에 도전은 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러한 구식의 편견과 구식의 사회구성 형태를 뒤집어 엎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막기 위해’ 싸운다. 그래서 새로운 생산방식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위해’ 싸운다. 만약 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승리하면,
그때는 새로운 생산형태가 실시될 수 없기 때문에 생산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퇴보하기조차한다.
이를 정리해보자. 생산력이 발전하면, 발전된 생산력은 기존의 생산관계 및 그것이
형성한 사회관계의 기초 위에서 성장한 관념들과 서로 충돌하게 된다. 이 충돌에서
새로운 생산력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승리하거나 아니면 낡은 체제 편에 서는
사람들이 승리하게 된다. 앞의 경우에는 사회가 진보하게 되지만, 뒤의 경우에는
사회가 틀에 박힌 채 그 상태 그대로 머물거나 심지어는 퇴보하기까지 한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인류의 미래는 낡은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에 맞선 투쟁에
달려있는 것이다. 

 <함께 고민해볼 문제>

1. 왜 어떤 사람들은 관념론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유물론자가 되는가?
2. 사적 소유욕은 없어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없어지는가?
3. 내가, 혹은 주위 동료들이 한 때 가졌거나 지금도 가지고 있는 기계적 유물론이
있으면 말해보       자.
4. 남한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충돌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