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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해복투 2006.02.09 조회 수 2742 추천 수 0
2005년 10월 8일 <중앙일보> 31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하라'는 우리 속담과 통한다. 프랑스어 'Noblesse(귀족)'와 'Obliger(의무를 지우다)'를 합친 말이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1764~1830년)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 천 년을 관통한 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고 강조했다. 로마의 귀족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전쟁이 터지면 귀족들은 솔선수범해 최전방에 나가 싸웠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금쪽같은 재산을 사회에 흔쾌히 내놓았다고 한다.

그는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오랫동안 거대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회지도층의 역할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최고 부자였던 '경주 최부잣집'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집안이 16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300년 동안 9대의 진사(進士)와 12대의 만석꾼을 배출한 데는 비결이 있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모으지 말고,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었다. 조용헌씨는 驌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란 책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조선시대의 정신이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규정했다.

우리 주위엔 고위 관리, 부자, 지식인 등 자칭 노블레스가 버글거린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면하는 이들이 많다. 이를 두고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병든 또는 부패한 귀족'이란 뜻)'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입으로는 사회정의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탈세.편법.투기 등을 꾀하는 사이비 노블레스를 빗댄 말이다.

지난 5일 서울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1+1 자원봉사 서약식'이 열렸다. 이 작은 불씨를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사회지도층이 자신의 부.명예.권력을 사회와 나누는 변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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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정체성을 찾아

[구리넷 한철수 기자] 2004-01-27 14:44:28


2년 전부터 신문지상은 물론 다중매체에서 갑자기 나타나 우리들의 입에 회자되는 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생소한 말이다.

이는 다년간 전문적인 수업을 마친 이들도 '고귀한 신분에 따른 의무' 정도로 사전적인 해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생소한 용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레스 오블리제'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쥬' 등 표기를 두고 제각각 쓰는 바람에 그 단어의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하지만 대분분의 언론과 출판매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로 본고에서는 적용한다.
과연 지속으로 화두에 오르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노블레스는 '사회 고위층 인사는 물론 높은 사회적 신분'이며 오블리주는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이 의무의 발단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적 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사회 고위층의 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남았으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겼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스쿠울'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 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렇게 모범을 보이는 서구 상류사회 사람들은 당연히 서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예들이 서구의 대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면 우리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일제시대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상류사회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항복의 10대 손인 가곡대신 이유원의 자제인 이회영(李會 榮) 6형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자신은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지만 8대를 내리 판서를 배출하고 7명의 재상을 배출한 조선의 명문가이다.
경술국치(한일합병)에 공이 있다는 명목으로 사회 지도층인 양반들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내렸는데 남작은 5만원, 백작 10만원, 후작에 게는 15만원. 15만원은 지금은 약 30억원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이회영 육형제는 일본의 회유를 뿌리치고 전 재산을 팔아 1910년 12월 혹한을 안고 만주로 향한다. 당시 이회영 일가의 재산은 지금 돈 2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였다고 한다.

이회영 일가는 독립군 양성을 위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10년 동안 3천백 여명의 독립군을 길러낸다. 또 서간도라 불리는 중국의 동북 3성 일대에 조선족 학교들을 세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쳤다.
이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된 독립군들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주력으로서 맹활약을 했다고 하고 6형제의 아들들도 대부분 독 립운동에 참여했다고 하니 이회영 집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훌륭히 지킨 것이다.

그러나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이회영 육형제 가운데 다섯째 이시영만 해방 조국의 땅을 밟았을 뿐 나머지 형제는 낯선 땅에서 비참하게 숨져갔다. '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솔선수범한 사례이다.

최근에는 유일한박사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경종을 울린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요즈음 "노블레스(지위층의 특권)만 있지 오블리주(도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현 우리의 기준에서 지도층이란 계급의 한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의문점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으나 관료·정치인·고급경 영인(물론 5%이내 포함)·법조인·군장성·전문가(의사·교수·예술인·종교인 등) 집단을 의미하는 상층으로부터 사회전반에 목소리 께나 내는 이들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행해하고 있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도덕적 부재를 질타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바로 최근 화두에 오른 '노블레스 오 블리주 부재'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체는 서구 봉건제 특유의 정신적 유산이다.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에 쌍무적 계약관계를 설정함으 로써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해 왔던 오랜 역사적 경험이 이런 전통으로 확립된 것이다. 따라서 동서고금 모든 사회의 상류 계층에 똑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원칙을 실행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잣대와 서구의 그것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치(德治)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와 사회의 이상향으로 꿈을 꾸어 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떠드는 개혁이란 제도권이나 기득권이하의 계층에서 시작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의지를 꺾는 것은 현재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힌 이들이 스스로 나눔의 철학과 베풂의 미덕이 앞섰을 때 진심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이는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섬겨야 하는' 평범한 진리가 선한 것을 강하게 만드는 것과 강한 것을 선하게 만드는 일 가운데 어떤 쪽이 상대적으로 쉽고 빠른지 역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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