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직무급제' 연기…선거 앞두고 눈치보나




기획재정부가 올 상반기 안에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었으나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노조가 기본 호봉제를 대신할 직무급제에 대해 반발하고 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또 지방선거 이후로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0일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해 9월 노동연구원에 발주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연구용역 결과를 최근 받아봤지만 다시 2차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연구용역 결과 공공기관 직무급제에 대한 대체적인 방향은 나왔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미흡해 이를 보완하기 위한 2차 용역이 필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1차 연구용역이 약 6개월 소요됐음을 감안하면 2차 연구용역 결과는 올 하반기에 나올 전망이다. 기재부는 당초 1차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공공기관 직무급제에 대한 정부안을 올 상반기에 마련해 각 공공기관에 제시할 계획이었으나 자연스럽게 하반기로 미뤄지는 모양새다. 정부 관계자는 "직무급제는 보수와 연계돼 있어서 노조가 매우 민감해한다"며 "공공기관별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장기 근속자가 많은 공공기관 노조 입장에서는 직무급제 임금 인상 폭이 호봉제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임금 삭감 효과가 있다"며 직무급제에 부정적이었다.

현재 공공기관 외에도 일부 금융기관에서 성과급제 대신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역시 노조 반대로 별로 진척이 없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공공기관 직무급제를 성과연봉제에 대한 대안이자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지만 정부 출범 직후 나온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빠진 바 있다.

직무급제는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큰 임금 격차를 뜻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소를 위한 한 방안으로 주목받았다. 노조가 잘 조직된 대기업일수록 연공서열에 따라 자연스레 연봉이 올라가 생산성과 상관없이 높은 임금을 받는 호봉제를 대부분 도입하고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이 같은 비용을 전가했고, 결국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은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7년 중소기업 상용근로자 임금은 대기업의 약 77%였지만 2016년에는 63%로 확 줄었다.

지난 1월 말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1999년 이후 19년 만에 출범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공공기관에서 직무급제가 선도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전문가들 지적도 많다.


정부 계획대로면 작년 말 시작됐어야 할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이 계속 늦어지는 것도 비슷한 사례로 지목된다. 조세재정특위는 부동산 보유세와 에너지 세제 등 정치적으로 예민한 세제 개편을 논의할 청와대 산하기구다. 실무 역할을 맡을 기재부 국장급 등이 이미 내정된 상태에서 또 출범이 연기됐다. 특위 위원장 인선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견돼 늦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민감한 보유세 인상 문제를 지방선거 이후에 논의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많다. 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특위 구성이 서너 달 늦춰진 만큼 구체적인 개편 방안 등은 시간상 모두 지방선거 이후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무급제나 조세특위와 달리 일자리 안정기금, 카드 수수료 인하, 청년취업 재정지원 등에서는 정부가 엄청난 속도전을 벌여 대조적이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국민이 좋아하는 포퓰리즘 정책만 내놓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싫어하는 정책은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단기적 안목만 갖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용어설명>

▷ 직무급제 :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원칙하에 업무 성격과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다. 기존 호봉제는 매년 일정 퍼센트(%) 기본급 인상이 자연스럽게 이뤄져 왔지만 직무급제는 직무 단계가 높아져야 임금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