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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변호사의 노동과 법] 업무방해죄와 한국노동운동

업무방해 2011.03.22 조회 수 2088 추천 수 0

 

[김기덕 변호사의 노동과 법] 업무방해죄와 한국노동운동

               -업무방해죄 대법원전원합의체판결에 부쳐

 

김기덕 변호사

1. 드디어 선고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평화적인 파업이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법리를 비난한 결정이 있은 뒤여서 쟁의행위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기대됐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대법관 전원이 모여 판결을 선고했다. 2006년 3월1일 철도노조 파업에 관한 업무방해죄 사건이었다. 단순히 출근하지 않은, 그야말로 평화적인 파업이었다.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 김영훈(현 민주노총 위원장)이 항소심에서 벌금 1천만원 판결을 선고받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이었다. 사건도 당사자도 재판부도 한껏 기대를 높였다. 기대로 심장이 요동쳤다. 2011년 3월17일 대법원을 향해 내 심장은 마구 뛰었다.

 

 

2.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면 노무제공 거부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뭐란 말인가, 이것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어 사용자의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된다면 그것은 업무방해죄의 위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위력이 없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니. 이에 김지형·박시환 등 5명의 대법관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하더라도 집단적인 노무제공의 거부는 위력이라고 볼 수 없다며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소수의견을 밝혔다.



3. 이 대법원 판결문을 읽는 순간 내 심장은 터져나갔다. 이제는 사용자가 예측할 수 있는 시기에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없는 파업은 드디어 이 나라 노동자에게 보장되게 됐다고, 따라서 노동자들이 전격적으로 파업을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그 범위에서는 파업권이 보장되게 됐다고, 파업 등 쟁의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제동이 걸렸다고 기뻐서 제멋대로 심장이 터져나갔던 것이 아니다. 만약 이 판결문을 읽고서 드디어 우리도 헌법에서 정한 노동기본권 행사가 보장되게 된 것이라고 기뻐했다면, 혹시 소수의견에 감격해 당신이 이제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는 날 헌법의 단체행동권 행사가 법원판결로 보장되게 될 것이라고 흥분해서 기뻐했다면 당신의 심장은 내 심장과 같이 뛰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바로 당신 때문에 당신의 어리석음이 오늘 이 어처구니없는 판결선고를 이 나라 노동자에게 선물했다.



4. 이(자본주의) 세상이 열리고 노동자는 노동운동으로 노동기본권을 쟁취했다. 그리고 이 나라를 건국하면서 1948년 제헌헌법은 단결, 단체교섭, 단체행동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렇게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노동자는 노동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법률로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 금지했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단체행동권 행사가 무엇인지, 노동조합은 쟁의행위가 헌법의 단체행동권 행사로 된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년을 이 나라에선 노동조합은 쟁의행위를 했다. 파업 등 쟁의행위가 정당하면 형사처벌과 손배 등 민사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배워왔다. 그렇다고 노동법을 교육하고 학습해왔다. 언제나 불법파업이냐 아니냐, 정당한 쟁의행위냐 아니냐만 문제됐다. 노조법 등 법률은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금지했으므로 정당한 쟁의행위는 예외적으로 인정됐다.

 

 따라서 쟁의행위는 처벌 등 책임을 져야 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조합은 헌법이 정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제한되고 금지됐다. 그래서 노동자는, 그 대리인은 자꾸 주체, 목적, 절차, 그리고 수단과 방법이 정당했다고 내세우며 정당한 쟁의행위니까 처벌할 수 없다고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읍소했다. 이러한 주장과 논리는 이 나라 노동자와 노조간부에게 철저히 내면화됐다.

 

 결국 오늘도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해야 될 때면 노조 법률학교에서 혹은 노동법교과서로 변호사, 교수로부터 배운 정당성요건을 차례로 머릿속에 살펴보고 나서 정당하다고 판단될 때에야 비로소 쟁의행위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파업을 처벌하고 책임 묻는 법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파업은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이 정당하지 않다고 해도 평화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한 것이라면, 쟁의행위 자체는 처벌이든 손배 등 민사책임이든 면책돼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는 터무니없이 주장하는 하는 바보가 돼야 했다. 그것은 체계화된 논리에 의하면 이 나라 노조활동 경험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므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5. 이(자본주의) 세상은 노동자의 집단적인 노무제공 거부, 즉 파업을 범죄로 처벌하고 불법으로 손배 등 책임을 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렇게 이 세상은 자본의 질서가 국가법제도로 세워졌다.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법, 영국의 단결금지법 등에 의해서 불법이 되고 범죄로 처벌됐다. 이 세상의 질서를 세운 초기에는 모든 것은 유동적이고 불완전했다. 봉건의 질서가 파괴된 뒤 세상의 질서는 공백이었다. 무기를 가진 자가, 권력을 차지한 자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부르주아(시민)계급이 권력을 차지했으므로 세상의 질서는 그들의 그림대로 헌법에 그려졌다. 그들의 질서에서는 노동자는 그들과 체결한 노동계약에 따라 복종해야 했다. 그들의 질서는 무엇보다도 계약자유의 원칙이 중요했다. 그들은 자유롭게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자들이었으므로. 그것이 새 세상의 법질서의 원칙이어야 했다, 이것을 민법의 기본원칙으로 못을 박고 구체적인 민사법질서를 세우고 해석하는 원칙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방해하는 노동자의 노무제공 거부는 불법이고 처벌돼야 했다. 그렇게 법질서로 규정했다. 이러한 세상에서 노동자는 투쟁해야 했다. 이 세상의 법질서는 그들을 계약노예로 규정했으므로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리는 확보돼야 했다.

 

세상의 법질서는 그들을 노예라고 했으므로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노예가 아니라고 세상의 법질서에 맞서 투쟁해야 했다. 200여년 동안 노동운동이 전개됐다. 자신들의 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자의 기나긴 항해였다. 그리고 노동운동사는 노동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범죄가 아니고 불법도 아니라고 이 세상의 법질서에 새겨 넣었다. 이 세상의 법질서에 파업 등 쟁의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새겼다. 나아가 노동운동사는 이 세상의 법질서에 파업 등 쟁의행위는 손배 등 민사책임에서 면제된다고 새기어 왔다. 노동자가 노동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할 뿐이지 민형사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새긴 후에 다시 집단적으로 그것을 하더라도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투쟁했고 그것을 법질서에 노동법으로 끼워넣었다.



6. 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라도 나와 당신의 심장이 같이 뛰지 않는 이유를 파악했어야 한다. 노동운동과 이 세상의 법질서에 관해 말해줬으므로 당신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정말 한심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이 세상의 노동운동이 쟁취해온 노동자의 권리를 놓치고 있다는 것에 분노했어야 했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2006년 3월 1일 철도노조가 중재회부시 쟁의행위를 금지한 노조법을 위반한 파업이었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했으므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소수의 대법관들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냐 여부와 관계없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다수의 대법관들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노동자의 편이 아니고,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소수의 대법관들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것이라고 그래서 노동자의 편이라고 당신이 말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어떠한 대법관이라도 이번 대법원판결에서는 김영훈 위원장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단지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의 적용에 있어서만 찬반으로 갈렸을 뿐이다. 노조법은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을 위반한 파업 등 쟁의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파업은 처벌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불법이 되고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져야 한다. 철도노조파업은 중재회부시 쟁의행위를 금지한 노조법을 위반했다. 따라서 소수의견이라도 김영훈 위원장은 노조법에 의해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7. 이번 대법원판결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받는데 진전된 판결이 아니다. 다만 이 나라 노동운동에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서는 파업 등 쟁의행위를 제한·금지하고 처벌하는 노조법이 노동자에게 보이도록 이것을 가리고 있던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실체를 드러나게 했을 뿐이다. 문제는 파업 등 쟁의행위가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 등을 이유로 범죄가 되고 불법이 돼 처벌받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그것을 규정한 노조법을 폐지해야 헌법에 명시된 대로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받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만약 사용자에게 예측할 수 있는 시기에 파업을 한다면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는 날만을 고대하고 이것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고 이 나라 노동자에게 말한다면 지금까지 노동기본권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이 나라의 노동운동과 함께 당신의 실패를 말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이든 간부이든 그 대리인이든 당신 때문에 내 심장은 터져나간다. 노예는 노예로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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