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동서발전(주)의 노동조합 지배개입 문제가 공중파 방송과 신문지상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작년말 발전노조 동서본부 소속 일부 조합원들이 산별탈퇴 및 기업별노조 설립을 위한 투표총회를 요구하였고, 부결되자 조합원 개별탈퇴를 받아 별도의 노조 설립을 획책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사측이 깊숙이 개입했고, 그 구체적 증거들이 언론에 폭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엄청난 일이 갑자기 터진 것처럼 너스레를 떨지만,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미 한국사회에 만연한 자본과 정권의 노조탄압과 지배개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발전노조에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지배개입과 폭력적 탄압들이 곳곳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이윤 추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의 속성과, 그러한 자본을 보위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정권의 역할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그들은 일관된 자세로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다. 노동자들의 분노와 힘이 클 때에 저들은 한발 물러나 양보하는 척하지만, 뒷구멍으로는 언제나 노동자들을 분열시키키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으며,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온갖 수단과 폭력을 다 동원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다. 문제는 우리 노동자다. 저들의 태도 변화의 원인은 우리 노동자 내부에 있었다.

 

  5개 발전회사 소속 노동자들로 구성된 발전노조를 기업별로 해체시키려는 시도는 일찍부터 있어 왔다. 2002년 3.8파업 직후 남동발전(주)을 매각하기 위해 사측은 징계협박을 수단으로 조합원들에게 발전노조 탈퇴를 강요했다. 당시에는 업무비리 적발로 코가 꿴 남동본부위원장이 사측의 충견 노릇을 했다. 하지만 남동발전 조합원들은 발전노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사측과 어용본부장의 음모를 짓이겨 버리고 민영화를 막아냈다.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한 발전회사의 어용노조 설립을 위한 물밑 공작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각 회사별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리 보전에 눈먼 동서발전 사장과 출세에 환장한 일부 사측간부들의 열정(?)이 먼저 표출된 것 뿐이다.

 

  이번 동서 사태의 전면에는 어용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측의 지원을 받아 기존 노동조합을 공공연히 비방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자신들을 따르라 했다.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용노조 시절부터 있어 왔던 존재들이다. 발전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싸울 때, 민영화저지를 위해 싸울 때, 모습을 감추었던 자들이다. 지난 10여년간 숨죽여 지내던 그들이 왜 지금 갑자기 용감해진 것일까? 거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현집행부의 잘못된 정책과 태도에서 그 한가지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현집행부는 전집행부에 대한 대항세력임을 표방했다. 이들은 선거 과정에서 ‘투쟁없는 승리’와 ‘실리주의’를 내세우며 어용세력들과도 광범위하게 연대했다. 모호한 실리주의는 투쟁에 지친 현장간부들의 환심을 샀고, 그들은 결국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집행부를 장악한 그들 앞에 놓인 정세는 만만치 않았다. 이미 MB정권의 지시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집행부 출범 한달만에 단협까지 해지해버린 발전회사의 원대한 계획은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단협이 해지되고 조합비 체크오프가 중지되었을 때, 많은 활동가들은 CMS를 조직하기 위한 힘겨운 현장투쟁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집행부는 비교적 넉넉하게 적립되어 있는 희생자구제기금에서 조합비를 차입하여 사용하는 간편한 방법을 택했다.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요구를 사측이 계속적으로 해태하자, 위원장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34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장소를 본사 마당으로 옮겨 또다시 33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천막농성이란 이벤트는 힘없이 중단되었다. 67일 동안 위원장과 집행부 중심의 투쟁을 진행하는 동안, 현장에는 그 흔하던 중식집회나 출퇴근 선전지침도 제대로 내려가지 않았다.

 

  집행부와 현장이 완전히 괴리된 순간! 그것은 사측과 어용세력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행동의 시점이었다. 사측의 막대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어용세력이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집행부는 속앓이만 할 뿐, 현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포위된 많은 조합원들이 일시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들에게 투항했고, 끝까지 저항하는 현장활동가들은 자신의 투쟁이 힘들어 주위의 조합원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어용세력은 급속히 세력을 키워갔고, 별도의 노동조합까지 설립하여 소송을 진행중이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사측의 비밀문건이 발각되어 폭로되었고, 현장은 분노로 들끓었다. 이 상황에서도 집행부는 현장을 조직하지 못했고, 또 다시 21일간 본사 로비농성을 통해 사측의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결국에 노사합의가 이루어지고, 동서 사태는 일정 부분 진정된 듯하다.

 

  현재 집행부가 현장순회를 진행중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순회가 노사합의서를 받아낸 집행부의 업적을 홍보하는 보고대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간의 경과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사죄하고,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만이 현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번 순회를 통해 조합원들의 다친 마음을 다소라도 위로하고, 이후 제대로 된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