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결과는 물질적 이익만으로 측정해서는 안된다.  
 

  투쟁은 물질적 성과에 국한할 수 없다. 그보다는 노동자의 대의와 원칙,
노동자 민주주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개량적 성과는
우리 노동자들이 투쟁의 의지와 힘이 있을 때에는 쟁취할 수도 있고 투쟁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을 때에는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 정신은 한 번
잃으면 회복이 어렵다. 나라를 잃어도 정신이 살아 있다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듯이 정신만 살아 있다면 개량적 성과는 언제든지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05년 투쟁은 작년의 재판에 불과하다. 무성의한 사측에 농락당하다가
용두사미의 결말을 보였던 작년의 연속이었다. 교섭과정을 보면 사측도 조합간부도
긴장감이 없다. 교섭장에 나온 사측은 마치 “다윗을 앞에 둔 무료한 골리앗”같은
거만한 태도다. 조합간부도 마찬가지다. 초창기 회의체에서 느껴지던 열기와
치열한 논쟁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결의가 관행화되는 분위기다. 진지하게 투쟁을
결의하는 조합간부라면 닥쳐올지도 모르는 해고와 구속의 두려움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회의적인 발언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진솔한 발언도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예견될 결말 앞에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악해진 것이다. 

  게시판을 보자. “파업을 위한 파업” “투쟁을 위한 투쟁”이란 말로
파업투쟁에 찬물을 끼얹었던 무리들도 사라졌다. 이것은 발전노조의 “뻥투쟁”이
정착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출투, 리본 및 투쟁복 착용, 준법투쟁, 상경집회 그리고 잠정합의...... 최근
발전노조가 임단투 시기에 보여준 공식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 한다. 출투와 투쟁복 착용은 앞으로의
투쟁을 알리는 서막이지 끝일 수는 없다. 신자두를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듯이
출투와 투쟁복의 착용은 긴장감과 자기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럼에도 반복된 용두사미식 결과는 이것으로부터 면역성을 만들어버렸다. 
  노동자들의 무기는 단결과 연대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모리배들이 아니라 노동자적 대의와
원칙 아래 하나로 뭉치고 그 힘으로 싸우며 그 과정에서 힘을 배가 시키는
조직이다. 최근의 발전노조의 투쟁에는 이러한 대의를 찾아 볼 수 없다. 투쟁이
노동자의 학교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교섭에 종속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투쟁만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이유없이 투쟁할 수 없고 파업할 수도 없다. 하지만 6대
요구안이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을 기만하고 조롱한 사측의 행태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히 파업의 정당성은 부여된다. 

이번 투쟁 과정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대의원대회 결의사항을 무시했다. 
  8월 20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8월23일을 마지막 교섭일로 결의했다.
하지만 쟁대위는 독단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물론 쟁대위의 판단으로
교섭을 재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섭 재개의 전제는 사측으로부터 6대 요구에
근접한 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대의원대회의
결의사항에 따라 쟁의 수순을 밟아 가야한다. 변변치 않은 제의에 받아들임으로
해서 스스로 6대 요구안의 정당성을 부정했음은 물론이고 대의원대회 권위만
떨어뜨린 꼴이다.  

  둘째, 공개의 원칙을 무시했다. 
  조합의 민주적 운영은 공개의 원칙이 생명이다. 합의안이 나왔으면
당연히 전조합원에게 공개하고 평가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한 것이다. 내용없는
빈껍데기 교섭은 착실히 공개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결과는 왜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는가? 
  비공개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오직 사측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일 뿐이다. 그런데 사측은 알고 조합원은 모른다. 이 무슨 해괴망칙한 경우
인가? 
  노동조합은 배타적 이익집단이 아니다. 정당한 요구사항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사항 중에 정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합의안에 정당하지 못한 결과물이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비공개는 어용들의
전유물이다. 

  셋째, 가장 선봉적인 조합원들의 사기를 꺾었다. 
  금번 임단투 과정에서 남부조합원들은 무계결근을 감수하며
연차투쟁을 하는 등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했다. 하지만 결과는 공허함 자체다. 
  노동조합은 가장 투쟁적인 조합원들을 대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최소한 이들의 사기는 꺾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조직에 전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 
  여러 조직들이 투쟁을 논의하면 일반적인 분위기는 “니가 하면 나도
할께”다. 대체적으로 싸움의 선봉에 서지 않으려한다. 대중 투쟁을 이끌어 가는
것은 소수의 조합간부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봉에 서는 조합원들이
있어야 다수의 조합원들도 투쟁의 대세에 합류하고 선봉지부가 있어야 다른
지부들도 자신감을 갖고 따라 온다. 선봉적인 조직이 없다면 소수의 조합간부들만
돌격 앞으로 하는 꼴이다. 아무런 성과도 자부심도 없이 그 누가 앞장서서
투쟁하겠는가? 따라서 05년 임단투에서 남부지부 문제를 전조합원들의 단결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잠정합의안을 만들어 투쟁을 접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집행부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통해 흠집을 내거나 합의안의 물질적 미흡함을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오직 나는 발전노조가 노동자적 대의와 원칙에 충실하는
조직으로 발전하는 것을 희망하고 그 길을 함께 만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