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분할·민영화 논란 재점화-미 보고서, 한국 구조개편안 경고
(한겨레신문 04-22)
미 보고서, 한국 구조개편안 경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 방향의 뼈대는 한국전력 분할과
민영화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이다. 다분히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논리에 기댄 방안이다. 하지만 정부가 용역을 준 한 미국 대학
연구소는 “미국에서 전력산업 구조 개편 경험을 볼 때 한국은 아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해,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애초 산업자원부가 한전을 통해 미국 델라웨어대학 에너지환경정책연구소에
이 연구용역을 맡길 때에는 “미국 전력산업 구조 개편의 효과 분석을 통해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둘러싼 반대 여론을 가라앉히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작 연구용역 보고서는 정부의 ‘판단 착오’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캘리포니아 사태의 교훈에 대한 상반된 시각=정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전력난 사태가 구조 개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지나친
환경규제로 발전소 건설이 차질을 빚었고 도매부문은 경쟁을 시키면서
소매부문에서는 가격을 통제하는 등 규제정책의 실패가 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게 산자부 판단이었다. 곧 규제를 더 풀어 민간 자율에 맡겨야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델라웨어대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전력산업의 구조 자체가 전력위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도매수요(발전회사에 대한 배전 및 판매회사의
수요)의 비탄력성, 발전사업자들의 시장 조작, 민간 전력사업자들의 막강한
영향력과 정치적 이해가 개입된 전력시장 감독 체계 등 시장구조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전력산업과 전기라는
상품이 지니는 특수성, 즉 비저장성, 수요의 비탄력성, 비대체성 등 때문에
“시장에 맡겨뒀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캘리포니아 전력위기가 실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대신 미국의 또다른 전력산업 구조 개편 모델인 ‘피제이엠(PJM)
체제’를 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미국 동부의
펜실베이니아-뉴저지-메릴랜드주가 민간 전력회사들을 묶어 공동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수평적·수직적 분할을 통한 경쟁체제라는 우리 정부의 구조
개편 방향이나 캘리포니아 모델과는 반대 방향이다.
◇ 구조개편의 방향 재검토 필요=보고서는 전력산업은 상품과 시장경제의
논리로 논의하기 이전에 중요한 공공 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며,
발전회사와 배전회사를 쪼개 소유·경영권을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관하여
경쟁을 유도한다는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 개편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특히 5개 발전회사를 쪼개 매각한다는 방침에 대해
“시장조작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며, 원자력과
수력발전은 정부 소유로 두어 안정적 전력 공급을 확보한다는 것도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고 전력기술 개발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배전부문을 분리해 여러 개의 지역회사로 나눈다는 계획도, “이 경우
지역 배전회사들은 시장의 변동이나 시장조작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애초 발전부문을 한전에서 강제 분할한 것부터 잘못된
것으로 평가했다. 더구나 2001년 분리된 한전과 전력거래소도 미국
‘피제이엠 체제’와 같이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유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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